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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의 i티타임] OTT의 적은 내부에 있다


입력 2020.12.24 07:00 수정 2020.12.23 16:10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묘목에 물 주긴 커녕 뿌리 뽑아 먹어 치우는 꼴

문체부 ‘상업적 목적’ 근거 빈약…업계 고사 위기

ⓒ웨이브

이제 막 옮겨 심은 작은 묘목이 있다. 비옥한 땅에 정성 들여 심었으니 물 잘주고 가지치기만 제때 해주면 옆에 있는 큰 나무들처럼 열매를 맺고 매년 수확의 큰 기쁨을 안겨줄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와서 묘목 뿌리가 맛이 좋다고 소문났다며 송두리째 뽑아 먹어버렸다. 비옥한 땅에 있던 영양분은 큰 나무들 차지가 돼버렸다.


올해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에 벌어진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뜻밖의 변수에 국내외 OTT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비옥한 땅이었다. 쟁쟁한 경쟁력을 갖춘 ‘K-콘텐츠’는 비싼 값에 해외로 수출되는 훌륭한 열매였다.


넷플릭스는 빠르게 영역을 확대하며 영양분을 흡수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심어진 웨이브·티빙·왓챠·카카오페이지 등 묘목은 비록 후발주자였지만, 자양분을 머금고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런 OTT 산업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문체부가 ‘OTT 음악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을 승인하면서 국내 OTT는 성장 가능성조차 박탈당할 처지에 놓였다.


문체부는 OTT 사업자에 대한 음악사용료 징수규정을 신설하고 내년 징수율을 1.5%로 확정했다. 연차계수를 적용해 오는 2026년 1.9995%까지 상향하기로 했다.


당초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은 기준인 매출의 2.5%를 요구했고, 국내 OTT 업체들은 기존 방송물재전송서비스 규정에 따라 0.625%가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문체부 결정은 언뜻 양측의 중간값으로 보이나, 업계에서는 미디어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체부는 OTT의 ‘상업적 목적’을 높은 징수율의 근거로 들었다. 기존 지상파와 유료방송사는 공공성을 확보했으나 OTT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다. 현재 ‘N스크린’이 보편화된 콘텐츠 소비 경향에 따라 시청자는 지상파 콘텐츠를 OTT로, 또는 인터넷(IP)TV로 즐겨 본다. 즉 전송하는 콘텐츠가 거의 동일해졌다. 지상파 드라마를 OTT로 본다고 해서 없던 상업성이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란 뜻이다.


이미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 지불한 음원 사용료를 OTT 사업자가 또 한 번 내게 되는 ‘이중징수’ 문제도 제기된다.


한 국내 OTT가 드라마를 제작할 때 배경음악에 대한 계약을 음악 창작자와 직접 체결해도 음저협에 또 한 번 음원 사용료를 내야 하는 꼴이 된다. 반면 넷플릭스는 콘텐츠 투자 시 음원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고, 음원사용료의 70~90%를 음저협으로부터 돌려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 정책’과도 대치된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 최소화로 OTT 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문체부가 이를 홀로 거스르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저작권 사용료는 규제가 아닌 음악 창작자들에게 돌아갈 몫”이라는 문체부의 주장은 당장 묘목의 뿌리부터 뽑아 나눠먹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가 있어야 따먹을 과실도 맺힌다. 뽑혀버린 나무에서 취할 건 타버리면 재로 남을 땔감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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