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선방한 반도체, 올해부터 초호황 진입으로 높아지는 기대감
K-메모리 넘어 K-반도체 위해선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 필수적
소·부·장 자립 위한 투자 지속 등 생태계 강화·체질 개선 노력 동반돼야
4차산업혁명에 더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까지 이어지며 국내 산업계의 발 빠른 체질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산업 트렌드 변화와 업황 악화로 경영전략 변화나 구조조정 등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빅뱅(Big Bang), 주력 산업의 사양화·레드오션화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혁신(Technical Innovation),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관성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등 새해에도 미래 산업을 좌우할 3대 테마(BTS)를 중심으로 기업들의 대응 현황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반도체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선방했다. 하반기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긴 했지만 상반기 재택근무와 화상회의 등으로 인산 수요 증가로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견조한 수요 흐름을 보이며 성과를 냈다.
반도체는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올해부터 초호황기인 '슈퍼 사이클'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펜데믹(대유행)으로 인해 비접촉·비대면 기술 수요 증가로 '전자산업의 쌀'인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초호황은 내년까지 이어지면서 지난 2017년과 2018년 두 해 동안 지속됐던 메모리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을 재현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미세공정 등 신기술 도입과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초격차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 사업 경쟁력 강화로 메모리반도체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개선해 K-메모리를 넘어선 K-반도체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 높아지진 반도체 초호황 기대감...초격차 전략 강화
반도체 초호황에 대한 기대감은 앞서 발표된 시장조사기관의 전망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와 가트너,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 등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대비 8.7% 증가한 4775억달러(3사 평균)를 기록할 전망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5세대이동통신(5G) 스마트폰 출시 확대와 비대면 경제활동 증가 등으로 완제품 산업 전반으로 수요가 늘면서 같은 기간 대비 15.5% 늘어난 141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이 전 세계 D램 시장의 4분의 3, 낸드플래시 시장의 절반을 점유할 정도로 K-메모리의 위상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높을 수 밖에 없다.
K-메모리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는 이러한 투톱의 경쟁력은 향후 시장 회복 속에서 초격차 기술력 확보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더욱 고공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경제활동의 증가로 5G 통신 칩셋과 이미지센서 등의 시스템반도체 수요가 늘어나고 이에 따른 파운드리 위탁 수요 증가도 기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주춤했던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회복되는 가운데 시스템반도체 수요도 확대되면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자료를 통해 “시스템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역대 최대치인 303억달러를 기록해 철강·석유 제품을 넘어 5위 수출 품목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올해는 5G 통신칩과 이미지센서 등 수요 증가 및 파운드리 대형고객 확보로 전년대비 7% 증가한 318억~33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초격차 메모리반도체 기술 경쟁력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비메모리 시장에도 보다 적극적인 투자로 경쟁력 제고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평택 2라인(P2)을 본격 가동하며 세계 최초로 D램에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 공정을 적용한 3세대10나노급(1z) 모바일 D램 양산에 착수했다. 또 올 상반기 170단 이상 낸드플래시 제품을 출시하며 메모리 경쟁력을 지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 지난해 잇따른 성과를 냈던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내년 3나노(㎚) 공정 양산 시작 계획을 발표하는 등 TSMC보다 한 발 빠른 3㎚ 공정 상용화 계획을 내놓으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전문) 업체들과의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업계 1위 TSMC를 본격 추격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올해 4세대 10나노(1a) D램 생산에 EUV 공정을 도입해 D램에서의 기술 주도권을 공고히 할 계획이다. 또 낸드부문에서는 지난해 개발에 성공한 176단 제품의 양산과 함께 90억달러(약 10조3100억원)를 투자해 인수하는 인텔 낸드 사업부문과의 시너지 효과 창출 방안도 모색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통해 이미지센서와 전력관리칩, 디스플레이구동칩 등을 위탁 제조하는 파운드리사업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 K-메모리 넘어 K-반도체로...초격차 위한 체질 개선 관건
반도체 초호황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시스템반도체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는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K-메모리로 불릴 정도로 메모리반도체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국내 반도체 산업은 비메모리분야에서는 경쟁력이 미미해 반쪽짜리 챔피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진정한 K-반도체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비메모리 강화를 통해 K-메모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또 시스템반도체의 무궁무진한 성장 잠재력을 감안하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약 70%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4차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5세대이동통신(5G)·자율주행 등 신기술의 등장으로 시스템반도체의 비중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전반적인 반도체 수요 증가 속에서도 비메모리가 메모리에 비해 더 높은 증가세를 보이면서 미래에는 비중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년 연속 새해 첫 현장 경영으로 비메모리 분야 사업장을 택한 것도 이러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4일 경기도 평택 2공장의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하고 반도체부문 사장단과 중장기 전략을 점검하는 것으로 새해 경영 행보를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에는 경기도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해 시스템반도체 개발 현황을 점검하는 것으로 한 해 경영 행보를 시작한 바 있다.
K-메모리가 아닌 K-반도체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려면 비메모리 분야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그만큼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잇따라 성과를 낸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이는 잘 나타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3분기 파운드리 시장 추정 점유율은 17.4%로 TSMC(53.9%)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업계 1·2위간 점유율 격차가 3배나 되는 상황이다.
옴디아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매출이 지난 2019년 600억달러 규모에서 지난해 682억달러, 올해 738억달러, 내년 805억달러, 2023년 873억달러, 2024년 944억달러로 향후 꾸준히 성장할 전망인 점을 감안하면 추격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와함께 반도체 칩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등 생태계 구축을 통한 전반적인 산업 체질 강화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계기로 정부가 소·부·장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소·부·장 자립을 위한 길은 험난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단기간 내에 소·부·장 독립을 이루기는 어려운 만큼 일본 수출 규제와 같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수입선 다변화와 함께 국산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의 국내 기술력으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는 품목들도 있어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지만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