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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세금 낮춰 달라!”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디바’


입력 2021.02.03 15:08 수정 2021.02.04 08:34        데스크 (desk@dailian.co.kr)

레이디 고디바 Lady Godiva, 존 콜리어 John Collier, 1898년, 캔버스에 유채. 142 x 183cmⓒHerbert Art Gallery & Museum 소장

존 콜리어(John Collier)는 1850년에 영국의 법률가의 가문에서 태어나, 미술애호가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런던에 있는 예술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역사적인 소재를 다루던 대가 장폴그랑으로부터 그림교습을 받았고, 라파엘 전파(19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발생한 화풍))의 대표적인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와 알마 타데마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인물화법을 터득했다.


여성의 전신상이나 인물을 주로 그렸던 존 콜리어는 뛰어난 초상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어 진화론자로 유명한 토마스 헉슬리나 찰스다윈 같은 당대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예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던 시기에 함께 미술공부를 했던 마리안 헉슬리‘(토마스 헉슬리의 큰딸)와 1879년에 결혼을 하지만, 불행하게도 첫 딸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별하게 된다. 이후, 죽은 아내의 여동생(토마스 헉슬리의 둘째 딸)과 사랑이 시작되는데, 당시 영국 법은 처제와의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1907년까지 시행된 법령) 결혼을 결심한 그는 노르웨이로 이주하게 된다. 두 번째 결혼에서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게 되는데, 아들은 1941년부터 10년 동안 노르웨이의 영국대사로 활동하였던 인물이다.


존 콜리어의 삶 내면의 모습은 어쩌면 그의 세밀한 작품 속에 비춰지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결로 표출이 되는 듯하다. 인물과 주위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존 콜리어의 그림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감각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밀한 붓 터치 묘사는 붓 자국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자, 매우 엄격하고 균형 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을 중시했던 고전주의적 조형방법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기막히게 구현해 냈다. 이러한 존 콜리어의 대표작 중 하나가 1898년에 제작된 ‘레이디 고디바’다. 이 그림 속에는 세밀한 묘사만큼이나 숭고한 사연이 담겨져 있다.


영국 런던에서 차량으로 약 7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코벤트리’라는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공습으로 인해 도시의 대부분이 초토화가 되었던 곳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다시 재건된 코벤트리는 중세시대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코벤트리 대성당 역시도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것을 마을 사람들의 노고로 잔해를 보존하였고, 지금의 대성당이 새롭게 그 옆자리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새로 지은 성당 앞 광장에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알몸으로 말을 타고 있는 한 여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전설속의 ‘고디바 부인’의 동상이다. 존 클리어의 화폭에 담긴 고디바 부인이 바로 이 동상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벨기에의 유명한 초콜렛으로 알려져 있는 ‘고디바 (GODIVA)’는 11세기 중세의 영국 코벤트리 시를 다스리는 ‘레오프릭 3세’의 부인으로 태생부터가 앵글로색슨족 출신의 ‘귀족’ 신분이었다.


레오프리 영주의 과도한 세금징수와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지켜보던 고디바 부인은 남편에게 세금의 감면을 수차례 간청했지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레오프릭 영주는 부인에게 “백성들을 향한 너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을 증명해 보라! 벌거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온다면 세금을 감면 하겠다”고 조롱하며 부인이 결단코 이러한 수치스러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 여긴 것이 당시 중세시대의 가장 큰 수치심이라 함은 벌거벗은 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레오프릭 영주는 거듭되는 전쟁과 폭정으로 인해 몰락하게 된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낮추어 달라는 고디바 부인의 간청이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동정심에 불과하다 여기며 무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측과는 달리 영주의 말을 듣고 몹시도 고심하던 고디바 부인은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해서 그 정도의 모욕은 감수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코벤트리 전역에 삽시간에 퍼졌고, 마을공동체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는 고디바 부인의 뜻을 존중하고 보호기위해 그 날에는 어는 누구도 외출은 물론 바깥조차 내다보지 않기로 굳건히 윤리적인 약속을 하게 된다. 결국 부인은 해내고야 말았고, 부인의 용기에 감동받은 레오프릭 영주는 세금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며 코벤트리 백성들은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 행동을 뜻하는 말인 ‘고다이버즘’의 탄생 신화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고디바 부인이 순례 때 모두가 그 광경을 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지만 마을에서 단 한 사람, 호기심 많은 고디바 부인의 재단사였던 톰은 그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훔쳐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관음 하는 자를 나타내는 속어인 ‘피핑 톰’, 즉 ‘훔쳐보는 자’ 라는 말이 생겨나게 한 장본이 되었고 전설에 따르면 톰은 고디바 부인의 알몸을 보는 순간 천벌을 받아 눈이 멀게 되었다고 한다. 숭고한 고디바 부인의 뜻을 성적인 호기심으로 더럽힌 것에 대해 신의 정벌을 받았던 것으로 해석되어 지는데, 재단사가 눈이 멀게 되었으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대가 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지 싶다.


영국 예술가들의 ‘고디바 부인’ 을 그린 작품은 여러 점 있지만, 그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로 영국 빅토리아시대에 활동했던 신고전주의 화가인 존 클리어의 ‘고디바 부인’ 이다.


화면 전체를 채우는 말과 붉은색 안장에 앉아 있는 고디바 부인을 전면에 배치한 고전적인 구도는 백성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그녀의 강인함을 전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주목 시킨다. 간결한 배경은 숨죽은 듯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으며, 아직 인생을 알기에는 너무도 어린 16세 영주 부인의 고운 살결과 수치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가슴을 가린 손, 수줍은 듯 다소곳이 숙인 고개, 단호한 의지를 붙들듯이 말고삐를 잡은 손, 고귀한 신분과 희생정신을 상징하는 듯한 금박이 들어간 붉은 천의 묵직한 배치는 엄격하고 존엄하기까지 하다. 해마다 코벤트리 에서는 고디바 부인을 기념하기 위해 ‘고디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BONUS NOTE:

‘레이디 고디바’가 상징하는 ‘지배자의 자기희생’을 매해 잊지 않고 기리는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학습했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고디바 부인의 전설 속 마을공동체 이야기처럼, 역사적으로 ‘공동체 정신’을 중시해 왔던 영국이었고 ‘타인에 대한 배려’야 말로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는 것과 유독 ‘예의범절’을 강조했던 나라로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를 돌아보았던,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라는 말이 필자역시 그렇게도 생소했던 시절도 있었다.


신사의 나라 영국조차도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공동체 정신이 붕괴되고 오로지 경쟁뿐인 사회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한들 ‘레이디 고디바’를 기리는 축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현대 상술에 의해 탄생된 고디바 초콜렛은 먹을 때 마다 그녀를 떠올리게 하며, 곧 다가오는 발렌타인데이에 생각나는 초콜렛 명화1위 자리는 당분간 쉽게 빼앗기지 않을 태세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술작품 감상 ‘예술소비 1단계’을 통해 알게 되는 작가의 작품세계는 이처럼 그가 살았던 동시대의 역사와 시대정신도 함께 되돌아보게 된다. 틀림없이 우리에게도 참으로 암울했던 시대를 살아온 조상들의 여러 업적과 전설이 역사와 예술작품으로 전해져 오는데, 이 시간을 통해 필자역시 좀 더 아름다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지금의 코로나19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체 정신’과 ‘지배자의 희생정신’ 이야 말로 ‘고다이버즘’(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행동을 뜻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훗날, 지금의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축제와 전설이 탄생되어지길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 aya@artcorebrown.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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