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달러 해킹·갈취한 혐의
"총 아닌 키보드 사용하는 은행 강도"
사이버 범죄를 경제난 돌파구로 여기는 듯
미국 법무부는 17일(현지시각) 13억달러(약 1조4400억원) 규모의 현금과 온라인 가상화폐 해킹 범죄에 연루된 북한 해커 3명을 기소했다.
법무부 홈페이지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기소된 3명은 모두 북한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소속으로 이름은 △박진혁 △전창혁 △김일로 확인됐다. 정찰총국은 라자루스 그룹·APT38 등 다양한 명칭으로 알려진 해킹부대를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는 이번 범죄가 북한 당국 소행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정권은 국가 자원을 활용해 수억 달러를 훔친 범죄조직이 됐다"고 비판했다.
작년 12월 제출된 공소장에 따르면, 기소된 세 사람은 지난 2017년 5월 랜섬웨어 '워너크라이'를 만들어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해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지난 2018년 3월부터 최소 작년 9월까지 피해자 컴퓨터에 침입할 수 있는 복수의 악성 가상화폐 어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해커들에게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 검찰은 북한 해커들이 슬로베니아 기업과 인도네시아 기업으로부터 각각 7500만 달러(약 828억원), 2500만 달러(약 276억원)를 갈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의 한 은행에서는 '크립토뉴로 트레이더'라는 앱을 활용해 1180만 달러(약 130억원)를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는 이들이 미 국무부·국방부뿐만 아니라 미 방산업체들을 포함한 에너지·항공우주 기업들을 대상으로도 악성코드가 포함된 이메일을 보내 정보를 빼내려 했다고 밝혔다.
존 데머스 법무부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총이 아닌 키보드를 사용해 현금 다발 대신 가상화폐 지갑을 훔치는 북한 공작원들은 세계의 은행 강도"라고 꼬집었다.
캘리포니아 중부지검 트레이시 윌키슨 검사장 대행은 "북한 해커들의 범죄 행위는 광범위하고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며 "이는 정권을 지탱할 돈을 얻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국가적인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북한이 대북제재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봉쇄 여파로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사이버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니콜러스 에버하트 미국기업연구소 분석가는 북한 해커들이 갈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13억 달러가 2019년 북한의 민수용 수입상품 총액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라며 "북한 경제에 있어 엄청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법무부의 이번 조치가 향후 북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사이버 활동에 대한 우려가 지속 제기되고 있는 만큼, 추가 제재 등 관련 후속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북정책의 '새로운 전략'을 예고한 미 국무부는 이날 "우리는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가장 빈번히 언급하지만, 악의적인 사이버 활동도 주의 깊게 평가하고 들여다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국무부는 북한의 코로나19 백신 제약사 해킹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악의적인 사이버 활동이 미국과 전 세계 국가를 위협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기소는 지난 2014년 미 영화사 소니픽처스 사이버 공격 수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희화화한 영화 '인터뷰'에 크게 반발했었다. 해당 영화를 제작·배급한 소니픽처스는 이후 데이터베이스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미국 측은 조사를 통해 북한 해킹그룹 '라자루스' 멤버이자 북한 조선엑스포합영회사 소속 박진혁이 해당 사이버 공격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박진혁은 관련 혐의를 바탕으로 지난 2018년 9월 기소됐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해킹 사건 배후로 북한 정부를 지목하며, 북한 정찰총국을 겨냥한 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박진혁은 소니픽처스 해킹 외에도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공격 △2016∼2017년 미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 해킹 시도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미 법무부의 기소와 관련해 "제반 절차는 미국의 사법절차"라며 "정부가 논평할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소된 북한 해커 3명과 관련해선 "정보사항이 포함돼있어 확인해주기 어렵다"며 "북한의 사이버 활동 관련 제반 상황은 유관기관과 협의해 관심 있게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