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GB대 ‘중간요금제’ 출시 긍정적, 세부 설계 아쉬워
ARPU 하락 방어하다가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을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쉽게 해결할 일을 뭉개다 괜한 고생을 할 때 종종 사용된다.
SK텔레콤의 5세대(5G) 이동통신 신규 요금제를 보니 이 속담이 떠오른다. SK텔레콤은 지난 17일 5G 요금제 2종을 신규 출시한다고 밝혔다. 월 6만9000원에 데이터 110기가바이트(GB)를 주는 ‘5GX 레귤러’와 월 7만9000원에 데이터 250GB를 주는 ‘5GX 레귤러플러스’로 구성됐다.
기존에 없던 월 100GB정도의 중간요금제가 생겼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200GB 요금제를 없애버렸다는 점은 아쉽다. 월 100GB 요금제가 생기면서 데이터 간극이 그나마 100~200GB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7만5000원(200GB)을 없애고 7만9000원(250GB) 요금제를 추가하면서 110~250GB로 격차가 다시 140GB만큼 벌어졌다.
SK텔레콤은 “데이터 제공량을 50GB 확대해 1메가바이트(MB)당 요금 가격을 낮춰 데이터를 다량 이용하는 고객의 부담을 완화했다”고 설명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5G 데이터를 월 250GB 씩이나 사용할 고객이라면 1만원 더 내고 8만9000원짜리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할 것 같다.
오히려 200GB 안팎을 사용하던 고객은 기존 7만5000원(200GB) 요금제가 사라지면서 체감 통신비가 7만9000원으로 오르는 것처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더욱 아쉬운 점은 신규 요금제 출시 이후에도 여전히 이동통신 3사 중 SK텔레콤만 4만원대 5G 요금제가 없다는 점이다. KT는 월 4만5000원에 5GB를 주는 ‘5G 세이브’가 있고, LG유플러스는 월 4만7000원에 6GB를 주는 ‘5G 슬림+’이 있다.
이번 요금제 출시 전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SK텔레콤은 사전 협의를 진행했다. 협의 과정에서 SK텔레콤은 6만원대에 100GB 안팎 데이터 제공 요금제를 출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정부에서는 SK텔레콤만 유일하게 이통 3사 중 4만원대 5G 요금제가 없는 만큼, 더 낮은 구간의 요금제도 함께 출시해야 한다고 밝히며 입장차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SK텔레콤은 4만원대 요금제를 출시하는 대신 월 5만5000원에 9GB를 주던 ‘5G 슬림’ 제공 데이터를 1GB 늘리는 미봉책을 썼다.
현재 SK텔레콤에 5G 요금제는 5만5000원이 최저다. 롱텀에볼루션(LTE)처럼 1만원대 표준요금제가 없어서 데이터를 다 쓰지 않는 고객이라도 선택지가 5만5000원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1위 사업자가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기업 보고 땅 파서 장사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롱텀에볼루션(LTE) 3만원대 요금제도 2011년 상용화 이후 2018년이 돼서야 나왔다. 새로운 망 투자비용 회수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미흡한 5G 품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한계로 치닫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5G 가입자는 1300만명을 넘었다. 그런데도 품질에 불만족한 소비자들이 많아 이통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으로까지 상황이 치닫고 있다.
시장 자체가 흔들리면 투자비 회수는 더 힘들어진다. 5G 가입자 확보를 위해 마케팅에 기울이는 노력만큼 기본적인 요금제 설계를 서둘러야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