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1만5천대 ‘의무구축’ 채우려 3사 공동구축 밀어붙이나
장비 도달거리 짧아 품질 보장 어려워…체계적 기준 세워야
정부가 5세대 이동통신(5G) 28기가헤르츠(GHz) 대역 기지국을 이동통신 3사 공동 구축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통사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개최된 ‘농어촌 5G 공동이용 행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28GHz 대역 의무 구축도 (이통 3사) 공동 구축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아마 크게 어렵지 않게 1만5000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올해 안에 28GHz 대역 기지국을 1만5000대씩 의무 구축해야 한다. 이는 이통 3사가 2018년 진행된 5G 주파수 경매에서 해당 대역을 받으면서 3년 내 구축하겠다고 약속한 숫자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한 수준이다. 실제 전국에 구축된 장비 수는 올해 1월 기준 SK텔레콤이 44개에 불과하다. KT 역시 현재 서울 광화문사옥 인근을 비롯해 수원·대전·대구·세종 등에서 테스트를 진행 중이나 약속했던 장비 수에 턱없이 부족하다. LG유플러스도 경북 구미 금오공대, 경기도 안산 반월 시화공단 등을 통틀어 한 자릿수 장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구상은 농어촌 지역 5G 공동망처럼 ‘로밍’ 방식으로 이통 3사 간 28GHz 장비를 공동 구축하는 것이다. 로밍은 A사 기지국이 설치된 지역에 B사가 망을 깔지 않아도 A사 망을 통해 5G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다. 3개 기지국을 깔 것을 1개만 설치해도 되니 비용도 절감하고 구축 속도도 빨라지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28GHz 대역도 회사 간 로밍이 가능한지 이통 3사에 실증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는 28GHz 주파수 특성과 장비의 기술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GHz 대역은 전파 도달 범위가 짧아 망 구축이 훨씬 까다롭다. 3.5GHz 장비와 비교하면 좁은 지역에 더 많은 장비를 깔아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중간에 조금만 간섭이 생겨도 연결이 끊겨버리는 ‘개복치’ 같은 주파수로 유명하다. 가뜩이나 이런데 공동 구축으로 서로 다른 회사 장비 간에 연결을 시켜버리면 롱텀에볼루션(LTE)으로 접속 주파수가 계속 바뀌면서 폰 배터리가 빨리 닳거나 음영지역이 발생하는 등 품질 보장이 어려울 수 있다.
이통사들도 이 같은 이유로 28GHz 대역 공동 구축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전국 단위 상용화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고, 꾸역꾸역 3사 공동으로 구축을 해놓고 나서도 사업 모델이 뚜렷하지 않아 천문학적인 장비 구축 비용 대비 본전을 뽑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공동 구축을 추진해 회사별로 채워야 하는 기지국 수만 깎아주며 면죄부를 주고, 정작 설치해놓은 장비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두당 1만5000대씩 총 4만5000대 구축해야 하는 것을 공동으로 1만5000대만 깔아 로밍으로 소위 ‘퉁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차라리 “도저히 답이 없어” 28GHz 대역 주파수 비용을 손상 처리한 마당이니 올해 의무구축 수를 채우지 않고 정부가 주파수를 회수하는 게 더 낫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아직 정부의 정확한 공동 구축 계획은 밝혀지지 않았다. 탄탄한 계획으로 28GHz 대역에서 공동 구축을 통해 자율주행이나 스마트팩토리 등 기업간거래(B2B)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공공 자원을 다루는 주파수 정책 실패 감추기에 급급해 실효성도 없이 소비자들에게 불편만 끼치는 미봉책을 꺼내들었다 훗날 수습에 더 큰 애를 먹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