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산업 진흥법’ 대표 발의…기본 틀 정하는 규정법
“20대 창업가 시절과 변한 것 없는 현실에 큰 충격 받아”
싸이월드 사태로 데이터 이동권 주목…주권적 권리 명시
데이터는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쌀’로 불린다. 쌀로 밥을 짓는 것처럼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 등 정보기술(IT) 기반 산업은 모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그만큼 데이터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으나, 국내에는 아직도 데이터산업에 대한 개념과 범위, 진흥 등을 규정한 ‘기본법’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사진)은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20대 시절 여성 창업가로서 취업 면접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한 적이 있는데 이 당시에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했었고, 데이터가 미래를 이끌어갈 분야라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꽤 오래 지난 현재까지도 데이터 관련 기본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허 의원은 데이터의 개념과 유형을 명확히 하고 데이터 주체의 주권적 권리를 명시해 이를 보호하는 내용의 ‘데이터의 이용촉진 및 산업진흥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데이터산업 진흥과 이용 활성화에 관한 국가의 역할을 규정하기 위해서다.
그는 “법안 목표는 국가가 데이터 이용을 촉진하고 산업을 진흥할 수 있도록 규정해 데이터산업의 육성은 물론 사회 전 분야에서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라며 “그간 경영계의 얘기를 들어보면 국회는 ‘규제법’만 만든다는 시각이 있었으나 이 법은 ‘규정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 의원의 전문 분야는 ‘데이터 분석’이다. 그는 개인이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모습들을 축적해 나오는 이미지를 경쟁력 있게 표현하는 ‘이미지 전략’ 분야 전문가다.
그는 “데이터라고 하면 보통 수치화되는 거창한 개념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의 표정·말투·행동 등이 모두 데이터화될 수 있다”며 “이를 활용한 미래 사업 기회가 무궁무진한 만큼 현시점에서 데이터 주권을 명확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1순위로 지원한 곳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며 처음 발의한 법안도 데이터와 관련한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이다”라고 언급했다.
싸이월드는 지난해 폐업 위기에 놓였었다. 그는 “기업이 폐업할 수는 있지만 32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싸이월드가 폐업하면 그간 쌓아온 140억장의 사진과 20억개의 다이어리, 5억개의 배경음악 등 모든 이용자 데이터가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는 위기였다”고 지적했다.
허 의원은 국민의 추억은 그 자체로 개인의 역사이며, 그 역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사회적 자산’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논의할 기구조차 없던 것이 현실이었다.
허 의원은 “내가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옮길 때 내 데이터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데이터 이동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문제 발생을 원천에 차단하고자 데이터 산업 진흥법을 고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는 곧 재화이며 그 데이터 재화의 주권은 명시되고 보호돼야 하고, 산업적 측면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법안 취지와 일치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산업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국가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중 관세 무역전쟁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전쟁으로 번지고 있으며, 중국은 2025년까지 1700조원을 정보기술(IT)산업에 쏟아붓고 있다.
허 의원은 “GDP가 기존에는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ion)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데이터총생산(Gross Data Product)이 새로운 경제지표로 등장했다”며 “국가 경쟁력에서도 국가 데이터가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된다는 의미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데이터의 이용촉진과 산업발전을 위한 기본법의 필요성은 시대적 요구이자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며 “전통의 IT 강국에서 ICT 선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관련 입법이 시급하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데이터 산업이 데이터 산업 진흥법 통과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나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화 시대로 예를 들자면 원유를 발굴하고, 그 원유를 가공해 수송하는 기본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같다.
허 의원은 “이미 지난해 ‘데이터 3법’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법안이 통과됐지만, 개별법의 조항을 개정한 것에 불과했고 데이터의 개념, 이용 촉진방안, 산업 육성, 활성화를 담은 기본법제의 도입이 절실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에 당선 직후부터 관련 연구를 계속해 왔고 지난해 12월 발의했다”며 “발의 후 4번의 소위심사를 통해 법안 완성도를 높였고, 다음달이면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데 만 1년 동안 노력해온 법이 통과될 것으로 보여 보람차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허 의원이 해당 법안을 발의한 비슷한 시기에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데이터 기본법’을 발의했다.
공통점은 ▲기본원칙 ▲기본계획 수립 ▲데이터 생산 및 보호 ▲데이터 유통거래 ▲산업진흥에 관한 조항인 인력양성·기술개발·표준화·시범사업 등의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다.
허 의원은 “차별점이라고 하면 저는 ‘데이터 주권’을 명시했는데, 데이터를 생산하고 가공한 자의 주체적 권리를 어떤 식으로든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데이터 주권이라는 용어는 법조문에는 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 수정됐지만 데이터 산업에서의 개인데이터의 보호를 위한 여러 조항을 살리면서 보다 안전하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부연했다.
허 의원은 데이터산업의 승패가 결국 인재확보에 달려있다고 봤다. 데이터를 이해하고 가공하고 분석해 적용할 사람들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는 “AI 세계시장 규모만 봐도 2018년 735억 달러에서 2025년 8985억 달러로 연평균 43.0%의 급성장이 예상되는데,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석·박사 이상급 연구자 숫자도 부족해 미국의 3.9% 수준인 405명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와 민간이 적극적으로 투자해 인재양성을 해야 한다”며 “추가 법안은 데이터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입법 보완할 사항이 나올 텐데, 산업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현재 중요한 것은 국회 법안심사가 신속하게 이뤄져 시행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상임위와 본회의 통과까지 잘 챙겨볼 예정이며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