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주자로 인정…아무 말 안 하는 게 바람직"
선거 개입 논란 차단…尹 주목도 높아질라 '신중'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질문에 말을 아꼈다. 윤 전 총장이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거론된다는 이유에서다.
윤 전 총장을 향한 문 대통령의 입장은 넉 달 전과 비교해 온도차가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를 향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과 관련해 여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윤 전 총장을 감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진 "윤 전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두고는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분석도 나왔다.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입지를 좁히기 위한 정무적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지 약 두 달 만에 여권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에 반발하며 총장직을 던졌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정권을 겨냥해 "우리 사회가 오래 세월 쌓아 올린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의 사의 표명 1시간여 만에 이를 수용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말이 나왔다. 검찰 인사와 관련한 신현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 파동'까지 겹치면서 문 대통령의 '사정라인 관리 실패' 측면이 부각됐다.
윤 전 총장이 아직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그를 '유력 차기 대권 주자'라고 인정한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 전 총장이) 차기 대권 주자로 인정되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대선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대권 주자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가 선거 개입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듯하다. 문 대통령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경선 개입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또 문 대통령은 자신이 윤 전 총장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향한 주목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윤 전 총장의 행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밝혀도 이슈가 될 거라는 걸 의식해 말을 아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검찰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수사,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수사 등과 관련해 "여러 가지 수사를 보더라도 이제 검찰은 별로 청와대 권력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