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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특권에 숨어버린 폭행녀… 우리 국민 뺨때리고 조롱한 벨기에대사 부인 처벌할 길 없다


입력 2021.05.18 05:00 수정 2021.05.18 10:38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대사 부인 끝내 면책특권 포기하지 않아…경찰,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전문가 "벨기에 정부가 직접 면책특권 박탈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로서는 손 쓸 도리 없어"

"추방한 뒤 벨기에 정부와 사법 절차 진행?…처벌 결과 통고받는 수준일 뿐"

"민사소송도 있지만 피해액 강제집행 어려워…외교 통한 피해자 사과와 배상 요구가 현실적"

피터 레스쿠이에 주한벨기에 대사 부인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구 한 옷가게 직원들을 폭행하고 있다. ⓒCCTV

서울 시내 한 옷가게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주한벨기에 대사 부인이 면책특권 때문에 국내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잇따르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외교관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행 상해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면책특권은 소위 말하는 절대적인 권한이라며 외교를 통한 피해자 사과와 배상 요구가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피터 레스쿠이에 주한벨기에 대사의 부인인 A씨는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옷가게에서 직원 2명을 폭행한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 A씨는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A씨를 불송치 하기로 했다.


면책특권은 1961년 마련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근거한다. 이 협약에 따르면 외교관과 그 가족은 체포나 구금을 당하지 않고 형사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돼 범죄를 저질러도 주재국에선 재판에 넘길 수 없다.


하지만 뒤늦게 공개된 매장 CCTV에는 A씨가 신발을 신은 채 흰색 바지를 수차례 입는 행동이 공개되고, 벨기에 대사관이 반말 사과문을 올리거나 한국인을 조롱하는 SNS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등 진정성 없는 사죄 태도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면책특권만 있으면 다인가"라는 분노 여론이 들끊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벨기에 정부가 A씨의 면책특권을 박탈했다면 A씨를 기소할 수도 있지만, 벨기에 정부도 면책특권 유지 의사를 전해오면서 즉각 A씨를 재판에 세우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A씨가 공직 활동과는 무관한 범죄 혐의를 받는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벨기에 측에 면책특권 포기를 요구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변호사는 빈 협약 41조의 '국내 법령 준수 의무'를 근거를 내세워 A씨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면책특권을 내세우는 것은 외교관의 직무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면책특권의 당초 취지를 악용하는 것"이라며 "벨기에 측이 사과는 했지만 면피성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벨기에 정부가 직접 A씨의 면책특권을 박탈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로는 손 쓸 도리가 없다는게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특히 면책특권 행사는 외교 관행이자 각국이 지닌 핵심 권리로 엄중한 예외가 아니면 박탈되지 않으며, 최근 5년간 주한 외교사절 관련 사건·사고 중 파견국이 면책특권을 포기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도 A씨의 처벌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이다.


외교부 청사. ⓒ연합뉴스

면책특권이 주재국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근거로 A씨를 추방한 뒤 우리가 벨기에 정부와 협의해서 사법 절차를 밟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A씨에 대한 벨기에의 사법처리에 관여할 수 없고 처벌 결과를 통고받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 변호사는 "결국 국내법이 아니라면 대사 부인이 폭행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요원하다"면서 "냉정하게 벌금형에 그치는 사안인데다가 벨기에로선 자국민이 피해받은 것도 아니어서 굳이 형사사건으로 수사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처벌 대신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는 방법도 있다. 빈 협약에 따르면 외교관과 그 가족이 공적 직무 외의 활동을 벌였을 때 민사소송 면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소송을 걸어 피해가 인정된다 할지라도 피해액을 강제집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다.


이 변호사는 "민사는 소송의 실익이 매우 낮다"며 "외교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이번 사안을 해결하는 데 가장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관계자들은 심지어 살인이나 강도 등 주요 범죄 혐의를 받는 외교관과 그 가족들도 면책특권에 의해 주재국이 선제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면책특권의 절대성을 섣불리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살인 강도 등은 사안이 중대한만큼 이들을 강제 추방하고 인터폴 국제체포수배를 발령해 타국에서 검거하는 방식을 동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A씨는 비교적 혐의가 경미해 외교적 마찰을 불사하며 이같은 방식을 동원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면책특권 대상자를 추방하는 것 외에 주재국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면서 "우리가 국내법을 개정하는 것처럼 이를 손질할 수도 없고 일방적으로 깨겠다고 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대사 부인이 면책특권을 악용했다고 국제협약에서 정해진 이 조항을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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