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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⑧] 그 배우가 뱉어서 명대사 ‘부당거래’


입력 2021.05.26 08:31 수정 2021.05.26 09:1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포스터 ⓒ이하 CJ ENM 제공

흔히 ‘명대사’라고 하면 사랑과 우정, 인생 등에 관한 깨달음이나 감동을 주는 대사나 내레이션을 떠올리게 된다. 일테면 영화 ‘인턴’의 “경험은 결코, 늙지 않아요” 같은 말이 그렇다. 경험의 중요성, 살아있는 우리가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게 무엇인가를 명료하면서도 신선한 표현으로 들려준다.


문구 자체로 인상적이지만, 인생을 아는 70세 인턴 벤 휘태커가 말하기에 더욱 와 닿는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그 벤을 로버트 드 니로가 우리가 아는 얼굴과 목소리, 심장으로 얘기하기에 깊이가 더해지고 힘이 실린다. 배우는 인물을,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작품 자체를 관객의 가슴에 배달하는 이다. 그 배우 가운데서도 유난히 인물을, 주제를, 작품을 풍성하게 전달하는 배달꾼이 있다. 명대사는 그들을 통해 탄생한다.


형사 최철기, 배우 황정민이 타협 없는 진지함으로 일군 캐릭터 ⓒ

영화 ‘부당거래’(감독 류승완, 제작 필름트레인, 배급 CJ ENM, 2010)에는 특급 배달꾼이 대거 출연했다.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이라는 연기 괴물들을 비롯해 마동석, 이성민, 정만식, 김민재, 천호진, 조영진, 오정세, 이희준, 이미도, 송새벽, 구본웅 등 후일 크게 될 배우들이 크고 작은 배역에 함께했다. 이 밖에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볼 수 있는 배우들이 많다.


웃음기와 인간미를 지우고 비리 경찰 최철기로 분해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악인이 되어가는가를 보여준 황정민의 연기, 한 마리 능구렁이처럼 강압과 비굴을 타고넘으며 사업가로 거듭나고자 했던 조폭 장석구의 욕망이 어떻게 삶을 생의 벼랑으로 모는가를 보여준 유해진의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조금 치도 멋있어 보이려는 아마추어의 모습 없이, 진정 프로답게 캐릭터와 작품에 공헌했다.


‘부당거래’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챙긴 건 배우 류승범이다. 최철기나 장석구보다 권력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선 검사 주양을 맡아 때로는 백정처럼 신나게 놀기도 하고 때로는 고압적 갑질을 발산하기도 하면서 장마당에 선 광대처럼 온갖 매력을 다 뿜었다.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대사들이 그를 통해 탄생했다. 주양이어서 맡겨지기도 했지만, 딕션(정확성과 유창함을 두루 갖춘 발음) 좋고 표현력 풍부한 류승범이 너무나 차지게 연기해 귀에 짝짝 붙는다. 어찌나 맛있게 발화하는지 영화를 다시 볼 때면 입을 오물조물해 가며 그 탄성, 장단고저를 함께하는 재미가 있다.


주양 검사 역의 류승범, 그가 뱉으면 명대사 ⓒ

“경찰이 불쾌해하면 안 되지. 아, 내가 잘못했네. 아,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요. 우리, 우리 공 수사관 증말(정말) 대단하시네! 아, 이 내가 대한민국 일개 검사가 증말 경찰을 아주 불쾌하게 할 뻔했어,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할 뻔했구먼, 내가 잘못했어, 내가. 거, 경찰들 불쾌할 수 있으니까 일들 하지 마! 경찰들 불쾌한 일들 하 지마. 경찰한테 허락받고 일해! … 내 얘기 똑바로 들어, 어!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상대방 기분 맞춰주다 보면 우리가 일을 못 한다고. 알았어요?”


주양 검사가 공 수사관(정만식 분)에게 최철기 관련 보충 자료를 확인하고, 공 수사관이 경찰이 최철기에 관해 내사에 착수했다고 답하자 알아봐달라고 지시한다. 경찰들이 내사에 관련해서는 불쾌해하는 심리가 있다고 말하는 공 수사관, 주양은 불쾌해할 게 뭐 있냐고 말하며 시동을 걸고 엔진을 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진 분노의 일갈이다.


아랫사람을 부릴 때와 기업 회장을 누를 때는 사뭇 다른 말투가 나온다. 태경그룹 김 회장(조영진 분)이 장석구 해동건설 대표(유해진 분)가 거슬린다며 청탁이 아니라 지시 어조로 징징대자 주 검사가 말한다.


“어르신, 적당히 좀 합시다. 아니, 겸상을 하니까 대한민국 검사가 아주 좆같아 보이시죠? 이참에 우리 한번 들어가서 대사나 맞춰 볼까? 태경 센터를 까드려야 내가 뭐 하는 사림인지 아시겄어!”


아시겄어! 시퍼런 서슬에 다시 봐도 간담이 서늘하다. 무슨 일을 벌여도 잠깐의 망신은 당할지언정 처벌에서 비켜서는 주 검사, 영화 마지막 장면의 고층 위 ‘하늘’마냥 높고 높은 양반이 비아냥 재주가 특별나다. “내가 겁이 많아서 검사가 된 사람이야”, “야, 다들 열심히들 산다, 정말 열심히들 살어”, “아이, 정말 가지가지들 한다!”, “머리 좋아서 검사 된 사람이 한 번 있었던 일을 어떻게 그리 쉽게 잊나”라고 말할 때면 정말 정강이를 한 대 까주고 싶다.


장석구, 권력의 틈바구니에 끼어 일희일비하는 우리일지 모르는…. 배우 유해진이 실감나게 연기 ⓒ

영화 ‘부당거래’의 허구가 현실이 된 뉴스를 종종 접한다. 무엇인들 더 나은 게 있겠는가마는 꼭 사라졌으면 하는 영화 속 현실이 있다. 유해진을 빌어 장석구가 말한다. “너 이제부터 범인 해라!”. 일명 가짜 범인, 배우를 세우는 일. 배우 이동석(우정국 분, 배우가 배우 아닌 아이러니는 ‘부당거래’의 백미)에게 장석구가 말한다.


“울 이유가 전혀 없는데 울고 있네, 바보같이. 야, 우리나라는 말이야, 아무리 쳐죽일 짓거리를 하더라도 미친놈은 절대 사형을 시키지 않아! 병원 가서 치료를 받게 한단 말이야. 내가 너를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고! 나 진짜 솔직하게 말한 거야.”


솔직히 말해, 다시 봐도 재미있고 11년 전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각본과 각색, 연출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촘촘한 영화에 카메오로 힘을 보탠 영화인들, 얼마 전 고인이 된 이춘연 씨네2000 대표와 이준익 감독 등의 얼굴이 반갑다. 시끌벅적 함께 살아가는 한국영화계가 느껴지는 영화, 인물들의 대사부터 긴장을 쥐었다 풀었다 하는 조영욱 감독의 음악까지 ‘귀를 열고’ 다시 만나는 건 어떨까.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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