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공백 속 커지는 위기론...높아지는 사면 필요성
코로나19로 정확한 판단·신속한 의사결정 중요해져
옥중 재판 부담 커지는 JY..."사면 전향적 검토해야"
국내 최대 기업 그룹 삼성의 총수 부재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종교계 등 각계 각층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가운데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경제계에 시작된 사면론은 이후 종교계와 시민단체,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구·광주 상공회의소에서는 지난 27일부터 이 부회장의 사면을 위한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러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시장과 경영환경이 급변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국내 최대 기업 총수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올 들어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등으로 미국과 중국간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한축을 담당하는 반도체의 위기가 닥칠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
◆ 높아지는 사면론 속 靑 움직이나...4대 그룹 총수 오찬 주목
이러한 각계 각층의 사면요구에 청와대도 다소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이 부회장 사면과 관련해 "충분히 많은 국민의 의견을 들어서 판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 공감대’를 언급한 것은 올 초 신년 기자회견때만 해도 '시기상조론'을 내세웠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온도차가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오는 8월 15일 광복절 특사때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면론이 각계각층으로 확산되면서 분위기가 고조된데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과 환경을 감안하면 한시라도 늦춰서는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이후 추가 언급이나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지난 25일 CBS라디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정서라든지 공감대 등도 함께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별도 고려가 있을 것“이라는 언급이 전부였다.
또 다음날인 26일 열린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와의 오찬 회동에서도 이와 관련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내달 2일로 예정된 문 대통령과 4대그룹 총수들간 오찬 회동이 더욱 주목되고 있다. 삼성은 구속 중인 이 부회장을 대신해 한·미 정상회담에 동행했던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찬 회동이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약 44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결정을 해준 기업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이 부회장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지가 관심사다.
◆ 총수 부재 속 신규 투자·M&A 결정 어려워...위기감 고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삼성과 이 부회장이 처한 현실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서 보여줬듯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더욱 중요해진 터라 총수 부재의 상황이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총수 부재는 대규모 M&A의 걸림돌로도 작용하고 있다. 삼성의 대규모 M&A는 지난 2016년 10월 이뤄진 미국 자동차 전장부품업체 하만(80억달러) 이후 전무하다시피하다.
이후에도 소규모 M&A는 여러차례 이뤄졌지만 조 단위 금액이 투입돼 총수의 경영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올스톱돼 있다는 것이다.
투자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생산라인 증설 등 꼭 필요한 투자는 이뤄지지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선제적인 투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이뤄진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도 사실 지난해부터 신규 라인 증설 차원에서 검토해 오던 사안이었다.
또 이에 앞서 지난 13일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투자 규모를 38조원(133조원→171조원) 증액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지난 2019년 4월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이는 정부의 ‘K-반도체 전략’이라는 정책 기조에 발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는게 재계의 판단이다.
구속 중인 이 부회장은 재판 부담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동안 2주에 한 번꼴로 진행되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재판이 내달부터는 주 1회씩 진행된다. 매주 한 번씩, 한달에 네 번씩 법원에 출두해 재판정에 서야 하는 것이다.
당장 내달 3일 공판이 예정돼 있으며 7월 22일까지 8주 연속 매주 목요일 공판기일이 잡혀 있다.
구속 중인 이 부회장의 완전치 않은 몸 상태를 감안하면 재판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구속 후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당초 3월25일로 예정됐던 첫 공판은 4월22일에야 진행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대미 투자 중 절반 가까이를 책임졌지만 총수 부재로 사상 최대의 위기가 지속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이후 급변할 글로벌 경제와 시장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의 사면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