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부회장 SNS 논란에 김어준 “재벌 오너 아니었으면 해고감”
기업인에 정치 프레임 씌워 ‘일베’ 낙인 무리수
“미안하다. 고맙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세월호 분향소 방명록에 써 논란이 됐던 문구가 4년 만에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자신의 SNS에 이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일상적인 표현이며 문 대통령을 단순 패러디 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문 대통령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며 기업 총수의 이 같은 표현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고,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지난 9일 방송인 김어준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정 부회장을 두고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로 낙인찍고 “재벌 오너 아니었으면 해고감”이라고 비난을 가하면서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전날에도 김씨는 “정 부회장은 야구 쪽에서는 칭찬받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 욕먹고 있다. SNS 하다가 욕 많이 먹고 있다”며 정 부회장을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의 SNS에 사용한 문구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지적까지 더해지자 8일 정 부회장은 “홍보실장이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 50년 넘는 습관도 고쳐야 한다”고 적었다.
재계에서는 자신이 사용한 문구가 논란이 된 점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김씨는 바로 다음날 "재벌 오너가 아니라 신세계 음식부문장 정도였으면 해고됐을 것", "재벌이 일베를 하면 그냥 일베"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재계에서는 기업인에 일베 낙인을 찍은 것도 모자라 특정 문구를 패러디한 것이 기업의 해고 사유에 해당하는 지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뒤집어 보면 재벌 오너라서 해고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가 속한 집단에서는 다수의 생각과 가치에 벗어나면 직장에서 해고 해 버리는 것 쯤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 또 지위가 있는 자들에겐 면죄부도 쉽게 내주는 걸까.
만약 평범한 직장인이 자신의 SNS에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해고됐다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아마도 이 또한 새로운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특히나 ‘공정’과 ‘소통’을 중시하는 MZ세대들에게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을 터다.
직장인에게 ‘해고’라는 단어는 가장 무서운 단어 중 하나다. 대통령이 연관돼 있다고는 하나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문구를 사용했다고 해서, 혹여 그 문구가 대통령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사용됐다고 해도 이게 해고사유가 돼선 안 된다. 더군다나 말 한마디에 큰 파급력을 가진 방송의 힘을 빌어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정 부회장이 기업 총수이고 SNS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라는 점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런 문구를 사용하는 행위가 해고를 운운할 만큼 위험한 일이고, 정치적 진영논리로 짓눌러야 하는 사안이라면 평범한 국민이건, 인플루언서건 자신의 SNS에 무슨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정 부회장이 유명인이라는 점 때문에 이런 비난을 받았다고 하기엔 김씨가 던진 말 한 마디의 여파가 너무 크다. 그의 말 한 마디로 신세계는 정치적으로 성향을 드러내거나 민감한 패러디 문구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면 해고하는 기업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의 방송 이후 재계에서는 김씨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이용해 한 기업을 정치적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을 이유로 ‘일베’ 운운하는 것 역시 편협한 진영논리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기업은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다. 정치판처럼 색을 덧씌워 프레임에 가두기에는 기업의 하루가 너무나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