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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장기표 별세에 "우리 시대 지킨 진정한 귀감"


입력 2024.09.22 18:00 수정 2024.09.22 18:04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장기표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빈소에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생을 노동·시민 운동에 헌신했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장기표 선생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키신 진정한 귀감이셨다"며 "장기표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도 했다.


고인은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노동 운동에 투신했다. 학사모는 1995년이 돼서야 쓸 수 있었다.


그는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등으로 1970~80년대 투옥과 석방, 수배 생활을 거듭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은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에는 이재오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힘을 합해 민중당 창당을 모색하며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연이어 창당하며 여의도 입성을 노렸다.


하지만 14·15·16대 총선과 2002년 재보궐 선거에 이어 17·19·21대 총선까지 7차례 출마했으나 한 차례도 당선되지 못했다. 특히 21대 총선에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선 출마도 세 차례 선언한 바 있지만, '여의도 울타리'에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노동·시민 운동에 일생을 바친 그에게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이 붙은 배경이다.


지난해부터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촉구하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로 활동해 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9월, 같은 후보였던 장 원장과 서울 종로구 청계천의 '전태일 다리(버들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참배하고 헌화한 바 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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