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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는 문학의 힘…활자에 불어 넣은 생명력 [무대 위의 문학①]


입력 2024.12.18 07:06 수정 2024.12.18 07:06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고전'은 마르지 않은 창착의 원천

셰익스피어 '리어' '맥베스' 등 공연 잇따라

뮤지컬과 연극 시장에서, 대중에게 익숙한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한 공연이 경쟁하듯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책 속 활자가 무대 위의 세트로, 혹은 배우들의 숨결로 생명을 입게 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불어넣는 식이다.


이 같은 시도가 완전히 새롭진 않다. 뮤지컬과 연극의 기초가 되는 희곡은 그 자체로 문학적 가치를 가지며, 장르의 기원을 따지더라도 문학과 깊게 얽혔다.


배우 조승우가 출연한 연극 '햄릿' ⓒ예술의전당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시작된 서양극은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제사 의식에서 시와 음악, 춤이 결합한 형태였다. 이후 16세기 후반 영국 런던에서 셰익스피어 등 작가들의 희곡을 통해 연극의 황금기가 열렸다. 연극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언어극’의 형태라면, 뮤지컬은 희곡을 바탕으로 한 ‘음악극’의 형태로 볼 수 있다.


뮤지컬은 당초 오페라, 오페레타, 발라드 오페라 등 19세기 후반 서양에서 다양한 장르가 융합해 탄생했다. 초기엔 대중적 오락을 목표로 희곡 기반의 노래와 춤을 곁들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였다.


업계에선 고전은 그 자체로 좋은 ‘유산’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문학에 기초를 둔 무대예술에서 고전은 더더욱 그렇다. 한 뮤지컬 제작자는 “고전은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이라며 “수 세기에 걸쳐 무대의 형태가 변했지만, 이야기가 가진 힘은 변하지 않는다. 올해만 해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몇 개나 공연됐는지만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공연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다양한 형태로 공연했다. 국립창극단은 3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를 창극으로 선보였고, 10월에는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 바비컨 센터에서도 이 작품을 선보였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제작한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은 4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했다. 5월엔 황정민 주연의 ‘맥베스’가 공연됐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햄릿’은 올해도 여러 차례 공연되며 주목받았다. 1월엔 전무송·이호재·박정재·손숙 등 연극계 거목들이 대거 출연한 ‘햄릿’이 공연됐고, 7월엔 국립극단이 ‘여성 햄릿’을 내세워 큰 충격을 대중에게 안겼다. 9월에는 배우 조승우의 첫 연극 도전작으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햄릿’이 올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고전뿐만 아니라 근, 현대 소설 등의 순수 문학은 물론 웹소설 등 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형태의 작품이 동시대 무대화되면서 공연계가 더욱 다채로운 콘텐츠 레퍼토리 발굴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연극, 뮤지컬 시장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배우 황정민이 출연한 연극 '맥베스' ⓒ샘컴퍼니

연극 티켓판매액 상위 10개 공연 목록에는 독일 문호 괴테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파우스트’와 김호연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불편한 편의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연극 ‘테베랜드’도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가 오이디푸스 신화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고, ‘나무 위의 군대’는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불린 이노우에 히사시의 작품이다.


뮤지컬 분야 상위 10개 공연 목록에 이름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벤허’는 루 윌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레베카’는 영국의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을, ‘캣츠’는 세계적 대문호 T.S. 엘리엇의 시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이미 과거부터 여러 시즌에 걸쳐 공연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온 작품들은 물론이고 최근 정유정의 소설 ‘종의 기원’, 구병모의 ‘파과’, 이금이의 ‘유진과 유진’, 손원평의 ‘아몬드’,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장용민의 ‘부치하난의 우물’ 등을 비롯해 ‘긴긴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망원동 브라더스’ 등이 잇따라 무대화됐다.


한 공연 관계자는 “고전은 물론이고 소설, 만화, 웹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이미 검증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작업물들은 연극과 뮤지컬 창작자들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기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대로 사용하면 그 나름대로 원작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찾아보는 재미를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면 또 그 나름대로 원작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면서 공연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기여하는 것은 물론, 기존 원작의 팬덤까지 공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효과까지 덩달아 얻을 수 있는 상부상조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면서 “실제 최근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통해 소설 팬덤이 대거 유입됐었던 만큼 향후 이 같은 시도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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