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과 이에 따른 경기 침체 속 맞이한 크리스마스…평소와 다른 무거운 분위기 형성
축제 열리는 청계천 일대 한적…"회사도 쉬쉬하는 분위기인데 관광객도 비슷한 생각일 듯"
명동 노점상인 "이 정도로 사람 없는 건 처음…계엄 여파 연말까지 이어질 줄 예상 못해"
붐비는 스케이트장 "생각보다 사람 많아 놀라…어수선한 정국 속 마음 편안해지는 곳"
따뜻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던 예년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올해는 비상계엄 사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등 탄핵 정국과 경기 침체 등이 잇따르면서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민생경제 활성화를 위해 행사나 축제 등을 정상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전보다 덜한 듯한 분위기다. 한 시민은 "축 처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처음"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인 지난 15일 행정안전부와 전국 지자체는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연말까지 재정을 적극적으로 집행하기로 했다. 또 내수 진작을 위해 지역 축제와 행사, 공무원 송년 모임 등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 등 몇몇 지자체에서는 탄핵 정국으로 미뤘던 축제와 행사 등을 개최했지만 얼어붙은 사회 분위기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데일리안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서울윈터페스타가 진행되는 청계천 일대, 명동,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찾았다.
이날 오후 방문한 청계천 일대는 축제하는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한적했다. 근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산책을 나온 모습은 종종 보였지만 축제 조형물과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광화문 인근 회사에 다닌다는 윤모(34)씨는 "축제를 진행한다고 해서 평소보다 사람이 많아졌다는 건 별로 느끼지 못했다"며 "나라 상황상 우리 회사도 올해 연말 회식을 간소하게 진행하면서 쉬쉬하는 분위기인데 관광객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축 처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매년 크리스마스면 시민과 관광객 등 몰려드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몸살을 앓던 명동 거리도 생각보다 한산했다. 경찰과 안전요원이 통제에 나섰던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명동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오랫동안 여기서 장사했지만 크리스마스에 이 정도로 사람이 없는 건 코로나19 이후 처음이다. 계엄 사태 여파가 연말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며 "내국인도 내국인이지만 여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와야 상권이 사는 곳인데 걱정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명동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만난 박진환(31)씨는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념해 여자 친구와 '신세계스퀘어'를 보려고 이곳을 찾았다"며 "작년에 사진으로 봤을 때는 사람들이 많아 일찍 왔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뻔했다. 카페에 가거나 근처 구경을 하다가 점등 시간에 맞춰서 다시 와야겠다"고 했다.
그래도 무거운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계천, 명동과 달리 서울 중구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은 많은 이용객으로 북적였다. 이날 체감온도는 한낮에도 영하 3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스케이트장을 방문한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케이트를 타며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겼다. 이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웃고 떠드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커플 강지웅(31)씨와 최다현(30)씨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도 와서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있어 올해에도 연차를 내고 방문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며 "어수선한 정국 속이지만 이곳에서 웃고 떠드는 시민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스케이트장만큼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찬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관계자는 "비상계엄 등 여러 상황 때문에 학생들의 방학이 늦어지면서 이용객이 줄 수도 있겠다고 우려했지만 20대, 30대가 많이 찾으면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오늘도 벌써 현장 예매와 온라인 예매가 거의 마감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