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유영상 대표 ‘투톱 체제’로 각 사업 역량 극대화
신설 ‘자회사 IPO·반도체 투자’…존속 ‘AI 컴퍼니’ 전환
SK텔레콤이 1984년 설립 이후 37년 만에 둘로 갈라진다. 통신과 반도체 사업을 두 축으로 한 ‘탈(脫)통신’ 컴퍼니로 전환을 가속한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10일 이사회를 열고 SK텔레콤(존속회사)과 SKT신설투자(신설회사)로의 인적분할을 결의했다. 미래 성장을 가속화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핵심이다.
SK텔레콤은 그동안 모비리티·보안·커머스 등 다양한 신사업에 진출했으나, 성장이 더딘 통신사라는 그늘에 갇혀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두 회사를 쪼갠 이유는 명확하다. 존속회사는 인공지능(AI)·디지털 인프라 성장을 이어가고 신설회사는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혁신기술 투자전문회사로 재탄생한다.
원스토어·11번가 등 자회사 IPO로 투자 실탄 마련
신설회사는 본격적으로 탈통신에 드라이브를 걸고 공격적인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 신설회사에 편제된 곳은 ▲SK하이닉스 ▲ADT캡스 ▲11번가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콘텐츠웨이브 등이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새로운 ICT 사업인 미디어·보안·커머스 등은 지난해 SK텔레콤 전체 영업이익 가운데 24%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올해 원스토어·ADT캡스·11번가 등의 IPO가 추진될 전망이다.
신설회사는 이변이 없는 한 박정호 사장이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박 사장은 신설회사로 편제된 SK하이닉스의 부회장으로 두 회사 수장 자리를 겸하게 된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자회사 배당수익과 IPO를 통해 실탄을 마련하고 국내외 반도체 회사 투자에 뛰어든다.
존속회사는 SK텔레콤 내 2인자로 평가받는 유영상 이동통신(MNO) 사업대표가 수장을 맡을 전망이다. 5세대 이동통신(5G)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기존 통신사업을 비롯해 클라우드·데이터센터·구독형 서비스 등 신사업에 집중한다.
SK텔레콤은 통신시장에서 공고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가입자를 기반으로 한 통신사업을 성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 대표는 하반기 통합형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AI·디지털 인프라 컴퍼니’로 탈바꿈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중간지주사 전환으로 투자 리스크 해소…공격적 M&A 예고
이번 기업 분할에는 내년 시행되는 개정 공정거래법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해당 법안 적용에 따라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은 현행 상장사 20%, 비상장사 40%에서 각각 30%, 50%로 높아진다. 자회사의 손자회사 지분율도 똑같이 상향된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선 연내 중간지주사 전환을 마쳐야 했다.
현재 SK텔레콤이 보유한 SK하이닉스의 지분율은 20.1%다. 연내 지배구조를 개편하지 않을 경우 내년 이후 지분율 10%를 얻기 위해 약 10조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SK하이닉스의 투자 실행력을 강화하는 목적도 컸다. 기존 ICT 계열 지배구조는 SK(주)→SKT→SK하이닉스로,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설 경우 SKT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구조였다.
그룹 내 가장 높은 투자 여력을 갖춘 SK하이닉스의 운신 폭에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M&A를 진행할 경우 피투자회사 지분 100%를 인수해야 하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탓에 그룹 차원에서 성장 잠재력이 있는 ICT 분야 M&A에 있어 위험 부담이 컸다.
하지만 SK텔레콤의 유·무선통신 사업부문을 뗀 신설회사는 이런 리스크에서 벗어난다.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로 투자에 제약을 받지만 신설회사는 기존 사업부문이 받을 영향을 신경 쓸 필요 없이 SK하이닉스로부터 공급되는 실탄(지분법 이익)을 바탕으로 공격적 투자에 나서며 보폭을 넓힐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