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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탄소중립③] 허접한 시나리오에…거세지는 탄소중립委 '책임론'


입력 2021.08.20 15:03 수정 2021.08.20 15:03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유효기간 지난 해외 보고서 그대로 반영

탄소중립위원 56% 추천 루트 불분명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윤순진 민간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

지난 5일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오류이다 못해 공상적이라는 평가가 난무하고 있다. 국가 망신살이다. 시나리오를 작성한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에 따가운 시선이 쏠린다. 30년 국가 대계는 현실을 면밀하게 따져 실현 가능한 목표를 수립해야 하고 산업과 경제 전반에 주는 영향도 고려해야 하는데 탄중위는 이러한 과정을 생략했다.


알고보니 탄중위는 3개월 동안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CC)가 작성한 문서를 한국화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들통이 났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는 2019년 5월에 '탄소중립 :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영국의 역할'을 발표했고 2020년 12월 최신판인 '제6차 탄소 예산'을 내놨다. 전자는 3개 안 중 1개 안만 탄소 중립 달성 안이고, 후자는 4개 안 모두 100% 탄소 중립 안이다. 우리나라 탄중위는 유효기간이 지난 데다 불안전한 탄소 중립 안인 전자를 반영했다.


남의 나라 실정에 맞게 작성된 보고서를 본 따다 적용하면서 탄중위와 탄중위를 발족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도에 금이 갔다. 국민을 더욱 혼란케 하는 부분은 탄중위가 최신 계획이 아닌 유통기한이 지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계획을 반영했다는 점이다.


윤순진 위원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영국 보고서를 확인 안 했다. 최근 자료에 대해 업데이트가 안 된 것 같다"며 "영국 정부가 영국의 제6차 탄소 예산 보고서를 올 4월에 수용했다. 일부러 소극적인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더 최근 걸 애써 무시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수립하지 않고 영국에서 폐기한 2년 전 자료를 벤치마킹 해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든 것은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남의 논문을 표절하고 오타까지 베낀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이는 바꿔말해 탄중위가 위원회 내부의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가 맞춘 기한에 맞춰 무리하게 진도를 빼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라고 덧붙였다.


탄중위원 56% 추천 루트 불분명…"전문성 부재 원인"

탄중위 구성이 내부의 자기 검증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탄중위 위원 상당수가 추천 루트 불명의 인사들로 구성돼 투명성과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정부 기조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에너지 전문가들이 배제됐다는 의혹도 나온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탄소중립위원회의 각 부처별 추천 인원 및 최종 위촉 위원 중 절반 이상(56%)이 추천 루트 불명의 인사들로 구성돼있다. 기후변화·에너지혁신 등 분과별 위촉직 위원 77명 중 정부 부처 추천 인사는 34명으로 44%에 불과하다. 탄소중립는 사실상산업부의 역할과 책임이 가장 큰 영역임에도 산업부 위원이 9명뿐인 점에도 지적이 제기된다.


양금희 의원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위촉직 위원 중, 절반 이상인 43명은 추천 루트 조차 확인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위원회의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 산업계의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탄소 중립 달성의 핵심은 결국 에너지 믹스 계획을 정밀하게 어떻게 수립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공학·산술적 전문성은 결여되고 이념·철학적인 잣대로 계획을 만들면서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질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탄소중립위원회 사무처는 "기후, 에너지, 산업, 노동 탄소중립 관련 분야 전문가와 산업계, 시민사회, 청년 등 각계 대표를 관계된 정부부처를 통해 추천받아 후보자 안을 마련하고, 최종 청와대 제출 및 검토 후 대통령이 위촉했다"고 설명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1안과 2안은 정부안이고 3안은 탄소중립위원회가 자체적으로 낸 안으로 알려졌다. 안건 출처가 이같이 명확함에도, 시나리오가 어떠한 근거로 산출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산업부 재생에너지과는 "탄소중립위원회로 답변 창구를 통일하는 게 좋겠다"며 말을 아꼈다. 정책을 주도적으로 전개해야 할 담당 부처의 실무 부서가 탄중위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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