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매출 비중 50%-71%로 높아...업황 따라 실적 좌지우지
가격 하락 반전으로 커지는 실적 우려...원가 절감·재고 조정
사업 다각화 필요성 대두…반도체 공급난 역량 강화 기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 등 메모리반도체의 높은 비중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초호황을 맞이한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확대를 본격화하면서 비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평택공장 생산능력 확대와 미국 팹(공장) 신설 등 고객 니즈(수요)를 최대한 충족할 수 있는 양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프라와 장비 등에서 전례 없는 투자를 진행 중이다.
회사는 올 하반기 경기도 평택 2공장(P2) 내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하는 등 그동안 파운드리 생산능력(캐파·CAPA)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다.
올해 캐파는 지난 2017년 대비 1.8배 확대된 상태로 오는 2026년까지 이를 3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평택 3공장(P3) 공사가 진행 중으로 향후 4~6공장도 순차적으로 건설될 전망이어서 캐파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년 5월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파운드리팀을 떼내 파운드리사업부를 신설한 뒤 실적 성장세도 지속하고 있다. 연초 미국 현지 한파로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가동이 중단됐던 1분기를 제외하면 분기마다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한승훈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전무는 지난달 28일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이런 계획에 따라 2017년 대비 올해 생산능력이 1.8배 확대됐고 2026년까지는 약 3배 가까이 큰 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달 중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미국 출장도 주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에 제 2의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매듭을 지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공식화된 이번 투자 건은 삼성의 해외 단일투자로 역대 최대인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증설 투자로 주 정부와의 인센티브 협상 등의 문제로 아직 최종 투자 지역이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 1공장(텍사스주 오스틴)과 같은 지역인 텍사스주 윌리엄슨카운티 테일러시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애플·퀄컴·구글·페이스북 등 대형 고객사들이 많아 제 2공장을 통해 대응력 향상이 기대되고 있다.
키파운드리 인수로 8인치 생산력 강화하는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 29일 매그너스 반도체 유한회사로부터 키파운드리 지분 100%를 575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미 이 사모펀드에 49.76%를 출자했는데 이번에 펀드가 보유한 키파운드 지분 100%를 모두 인수한 것이다.
팹리스(Fabless·반도체설계전문) 기업들로부터 제조를 위탁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기업인 키파운드리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8인치(200㎜) 웨이퍼를 기반으로 전력 반도체(PMIC)·디스플레이구동칩(DDI)·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8인치 파운드리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보유하고 있는데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생산캐파가 월 9만장 수준인데 키파운드리의 웨이퍼 처리량이 이와 비슷한 규모여서 파운드리 생산능력이 2배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수로 8인치 반도체 생산 거점이 중국과 국내로 이원화할 수 있게 되면서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는 중국 현지 팹리스 업체들을 공략하기 위해 생산거점을 충북 청주에서 중국 우시로 옮긴 바 있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는 DB하이텍을 제치고 국내 2위 파운드리 업체로 올라서고 전 세계적으로는 10위권 업체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로 전체 매출의 5% 수준에 불과한 비메모리 사업 비중 증가로 이어질수 있을지도 주목되고 있다.
이와함께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낸드플래시 경쟁력 강화에도 이미 나선 상태다. 지난해 10월 인텔 낸드사업부를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역량 강화와 영역 확장을 동시에 꾀하고 있다.
지난 1년간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가 진행 중이다. 심사 대상 8개국 증 국내를 비롯, 미국·유럽연합(EU)·타이완·브라질·영국·싱가포르 등 7개국의 승인을 받은 상태로 현재 중국 당국의 승인만 남겨두고 있다.
높은 D램 비중 낮춰야 지속 성장 가능 판단
이러한 움직임은 양사의 주력인 D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에서 D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71%(올해 3분기 기준)에 달하며 삼성전자도 D램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50% 수준일 정도다.
문제는 이러한 높은 비중 때문에 D램의 업황에 따라 실적에 미치는 파급력도 커질 수 밖에 없다는데 있다. 당장 4분기부터 D램 가격이 하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양사의 실적 우려가 커진 상태다.
타이완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0월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고정거래가격의 평균값은 3.71달러로 전월(4.10달러)대비 9.51% 하락했다. 이는 지난 2019년 7월(-11.18%) 이후 최대 낙폭으로 지난해 10월(-8.95%) 이후 1년 만에 하락세로 반전됐다.
고정거래가격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대형 수요업체에 대량 공급(납품)시 적용되는 고정된 가격이다. 10월 가격 급락은 공급망 병목 현상에 따른 수급 차질을 우려한 PC 제조사들이 그동안 물량을 사전에 확보해 재고가 많이 축적된 상태였던 점이 작용했다. PC 제조사들은 현재 12∼14주 정도의 재고를 보유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승세를 지속해 온 D램 가격이 10월 들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4분기 시황이 '피크 아웃'(peak out·경기가 정점을 찍고 하강)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트렌드포스는 D램 가격이 4분기에 전 분기 대비 3∼8% 하락하기 시작해 내년 평균 판매가격은 올해보다 15∼2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4분기를 시작하는 첫 달 D램 가격 하락 폭이 전망치보다 더 크게 나타나면서 추가 낙폭 확대에 대한 우려가 감지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2위 업체로 비중이 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에 힘입어 지난 2017~2018년에 기존 최고 기록들을 연이어 갈아치우는 역대급 실적을 낸 것과 마찬가지로 시황이 악화되면 그대로 실적이 하락하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양사는 D램 가격 하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면서도 업황 악화에 대비해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에 나서고 향후 시황 변동에 따른 높은 불확실성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재고 수준을 최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파운드리 등 반도체 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통해 D램 등 메모리반도체 비중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파운드리만 해도 투자가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야 하는 만큼 당장 메모리 위주의 실적 구조를 단기간 내 바꿀수는 없는 실정”이라면서도 “양사가 D램의 높은 의존도를 해소하지 않으면 향후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려워 비메모리 경쟁력 강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