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의 법의학자 이어 ‘지리산’으로 조명하는 레인저들
지리산 생령이 된 주지훈, 반전으로 유발하는 흥미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tvN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2010)를 통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김은희 작가는 빌라 사람들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비밀들을 독특한 분위기로 풀어내며, 장르물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시청률은 비록 낮았지만, 독창성과 짜임새 있는 전개만큼은 인정을 받았었다.
이후 드라마 ‘싸인’과 ‘유령’, ‘시그널’ 등 걸출한 장르물을 남기며 장르물 대가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를 통해 ‘한국형 좀비물’의 새 지평을 열며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들의 인정까지 받았다.
현재 방송 중인 tvN 주말드라마 ‘지리산’을 통해서는 지리산 국립공원을 누비는 레인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레인저들의 감동적인 활약은 물론, 김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유발 중이다. 과도한 PPL과 허술한 CG로 일부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고는 있지만, 각종 반전과 서스펜스로 보는 이들의 눈길을 붙들어 두고 있다.
◆ 법의학자→레인저, 허점 없는 전문직 드라마
한때는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를, 법정 드라마는 법원에서 연애를 한다는 지적이 있을 만큼 로맨스에 치중하는 전문직 드라마들이 많았다. 현실성 떨어지는 ‘기승전-연애’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실망을 자아내곤 했던 것이다.
2011년 등장한 ‘싸인’은 그 편견을 완전히 뒤집는 드라마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로, 법의학자들의 딜레마와 고민을 추리 서사 안에 녹여내며 현실감을 확보했다.
그들이 죽은 이의 몸에 새겨진 증거물들을 어떤 과정과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집하는지 또 이 과정에서 겪는 각종 고뇌와 갈등까지. 폭넓게 담아내며 한 편의 탄탄한 법의학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남다른 신념을 가진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 분)과 그를 멘토 삼은 후배 고다경(김아중 분)이 콤비로 활약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의 로맨스를 예측하는 시청자들이 있었으나, 김 작가는 이 예상을 기분 좋게 뒤집었다.
이후 ‘유령’에서는 각종 사이버 범죄를 다뤄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사이버 수사대원들의 애환과 활약, 인터넷과 SNS의 파급력에 대한 경고를 담아내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레인저라는 낯선 직업군을 다루는 ‘지리산’에서도 히어로를 방불케 하는 그들의 활약이 이목을 끌고 있다. 지리산을 제집처럼 누비는 그들의 전문성을 조명하는가 하면, 재난을 뚫고 사람을 구해야 하는 애환까지 극에 녹여내며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전달 중이다.
◆ 치밀한 서스펜스로 유발하는 흥미
‘싸인’은 ‘결말’까지 완벽한 드라마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남자 친구를 살해하고도 대선 출마를 앞둔 강준혁 의원의 딸이라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 갔던 강서연(황선희 분)의 범죄 사실을 밝히고자, 윤지훈이 스스로 직접 피해자가 된 것이다.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긴 것은 물론, 죽으면서까지 자신의 몸에 증거를 새기고자 발버둥 치는 윤지훈의 그 다운 선택이 남긴 여운이 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김 작가는 뻔한 선택은 배제하고, 늘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여주는 탓에 늘 긴장하며 작품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타임슬립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소통한다는 독특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나가며 ‘웰메이드’라는 호평을 끌어냈었다.
초반부터 주인공 강현조(주지훈 분)가 지리산을 벗어날 수 없는 생령이 됐다는 반전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김 작가가 어떤 치밀한 전개로 흥미를 자아낼지, ‘지리산’의 다음 전개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