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짐 당해”
“비리의혹 대선에 참여 안할 것”
갑자기 ‘군사문화 잔재’는 왜?
홍준표 의원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끝까지 선전했다. 그리고 안타깝게 패배했다. 그야말로 석패(惜敗)였다. 2022 대선을 1년 앞두고 있던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여론조사 지지율 5%대 아래쪽에 머물렀던 홍 의원이 9월 이후 윤석열 후보와 호각세를 이루며 선전한 그 자체가 놀라운 도약이었다. 그의 재기를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실은 아주 적었다. 그가 다시 대선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것을 ‘코미디’로 본 사람들이 그의 성공을 믿는 사람보다, 아마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짐 당해”
그런 그가 일을 냈다. 여론조사에서 역선택의 효과가 아주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 후보에 비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게 최종 경선 결과로 확인됐다. 윤 후보와 그의 캠프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되치기 당한 수 있다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었을 지도 모른다.
여론조사에서 크게 이기고도 책임당원 투표의 벽에 막혀 주저앉아야 했던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조금은 짐작할 수가 있다. 그야말로 ‘한없는 이 심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자리에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겠다. 모두 합심해서 정권 교체에 꼭 나서 주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국민적 관심을 끌어줬다는 것이 제 역할이었다”며 윤 후보의 승리를 축하했다.
‘아름다운 승복’이 말로는 쉽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기꺼이 당원들 앞에서 웃는 얼굴로 승자와 포옹하고 그 손을 들어줬다. 많은 국민이 홍 의원의 다른 면, 그간 경쟁심에 가려졌던 진면목을 보는 기분을 느꼈을 법하다. 그런데 돌아서기 무섭게 SNS를 통해 자신의 말을 도로 주워 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글을 거듭해서 올렸다. 전당대회 후 쓴 글에서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 국민 여론에서는 예상대로 11%나 이겼지만 당심에서는 참패했다.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이지만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모두 힘을 합쳐 정권교체에 나서 달라”고 함으로써 윤 후보와 당의 대선 승리를 위한 어떠한 역할도 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이어서 그는 “비록 26년 헌신한 당에서 헌신짝처럼 내팽개침을 당했어도 이 당은 제가 정치인생을 마감할 곳”이라며 “이번 대선에서는 평당원으로 백의종군 하겠다”라는 글을 올렸다.
“비리의혹 대선에 참여 안할 것”
서운한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워서였겠지만 “국민들의 절반(48%)에 이르는 지지를 받고도 낙선하는 희한한 선거도 있다”는 개탄조의 표현을 보탰다. “그러나 70%에 이르는 지지를 보내주신 2030의 고마움은 잊지 않겠다. 욕도 이젠 더 먹지 않고, 더 이상 진영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관조하겠다”며 “이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고 했으나 행간의 감정을 지우진 못했다(이 글은 곧바로 삭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7일 페이스북에 전당대회로 자신의 역할을 종료됐다면서 “사상 최초로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의혹 대선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는 글을 또 올리면서 2040과 함께하는 새로운 정치 일정 구상을 소개했다.
‘2040들의 놀이터 청년의꿈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카톡과 메시지를 보내준 그 사람들과 거기서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적은 다음 “회원 수가 100만이 되면 그게 나라를 움직이는 청년의 힘이 됩니다”라는 말로 맺었다.
이런 게 바로 ‘뒤끝작렬’이다.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의혹 대선’이란 아마도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윤 후보도 비리의혹의 당사자라는 뜻이겠다. 그들이 겨루는 대선에 끼어들기 싫다는 것인데 자가당착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이미 윤 후보와 경쟁을 벌였다. 거기서 이기면 민주당 이 후보와 겨루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른바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 의혹 대선’임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인가.
“26년 헌신한 정당에서 헌신짝처럼 내팽개침을 당했다”는 말도 혼자만의 감정 표현일 수 있다. 자신은 헌신했다고 여기겠지만 그 오랜 세월 당의 신세를 졌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번의 원내대표, 두 번의 도지사, 두 번의 당 대표(거기에 더해 한 번의 대선 후보)를 역임하며 당 발전과 당세 확장에 기여한 것보다 당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과오가 더 컸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 오랜 기간 당에 몸담았을 뿐 아니라 당 요직을 섭렵했는데도 결정적인 순간에 돕겠다고 나선 당 소속 국회의원이 단 두 명뿐이었다는 사실의 의미는 또 뭔가.
갑자기 ‘군사문화 잔재’는 왜?
‘청년의꿈 플랫폼’에 100만 명의 청년들을 모으겠다는 구상도 ‘깨끗한 승복’과는 거리가 멀다. 청년들을 자신의 지지자로 묶어 두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다(국민의힘 경선 구도 속에서 자기를 지지했던 2040 세대가 이후에도 계속 그 선택을 지켜나갈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일 수도 있다). 전당대회 후 청년 당원의 탈당 러시가 일고 있다는 언론보도에 고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 홍 의원을 지지하는 청년들이라면 오히려 든든한 응원군으로 당에 남겠다고 하지 않을까?
언론들이 그의 페이스북 글을 들어 원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자 홍 의원은 같은 날 다시 페이스북에 이를 부인하고 질책하는 글을 올렸다.
“처음부터 백의종군이라고 선언했으면 액면 그대로 봐주면 될 것을 꼭 못된 심보로 그걸 걸고넘어지는 것은 획일주의 군사 문화의 잔재가 아닌가요? 우리당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정당입니다. 당원 개개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입니다.”
백의종군이든 뭐든, 윤 후보의 당선을 도울 어떤 역할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스스로 분명히 했다. ‘원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원팀에 자신은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말 아닌가? 참여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을 지지했던 청년들과 만나는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까지 했다. 의도하든 안 하든 적전분열을 유도하는 셈이 된다. 그러면서 갑자기 ‘군사문화의 잔재’는 또 뭔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당이 군사정권 시절 집권당의 후신임을 상기시키자는 뜻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내년 대선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당 공천 후보의 당선을 돕는 것과, 뒤에서 자신의 청년부대와 함께 ‘비리의혹 대선’을 비판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홍 의원 자신을 큰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시킬 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고 나서 자신이 참여했던 경기에 대해 이런 저런 흠을 잡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속 깊고 도량 넓은 원로정치인, 공을 위해 사를 희생시킬 줄 아는 큰 지도자로 이미지 재구축 작업을 벌이는 게 어떨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