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성·장혁 주연
피가 낭자한 잔혹한 장면들, 여성 캐릭터의 성적소비, 불필요한 거친 욕설들 등 액션 누아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장면들이 있다. 남자들의 거친 암투를 극대화시키려는 장치지만 이제 클리셰로 인식돼 누아르 장르는 취향에 따라 기대와 호불호가 나뉜다.
유오성, 장혁 주연의 '강릉'은 이같은 클리셰를 피해갔다. 이런 요소 없이도 남자들의 욕망과 갈등, 그리고 우정들이 깊게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강릉의 거대 조직을 관리하는 길석(유오성 분)과 타지에서 강릉을 접수하고자 하는 민석(장혁 분)의 대결 구도를 그린다. 민석은 밑바닥부터 사전수전 겪어온 인물로 목표만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길석은 강릉과 조직의 평화를 지키고자 민석에게 손을 내밀지만, 자신의 것을 빼앗고자 다가오는 공격 앞에 소중한 사람을 잃고 변화한다.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것이 주요 반전과 복선이지만 여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조직 간의 서열 싸움, 복수라는 낡은 소재를 시대와 어울리게 구축하고 낭만과 깊이를 더해 우려냈다. 남을 위협하거나 불쾌한 기분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됐던 거친 욕설이 강릉의 사투리로 대체된 점이 흥미롭다. 사투리의 투박함과 억양만으로도 욕설에 못지 않은 압박감으로 누아르 분위기를 완성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배우들의 활용이다. 유오성과 장혁을 중심으로박성근, 길성의 부하 오대환, 신승환, 이현균, 송영규까지 허투루 소비되는 캐릭터가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탄탄한 뒷받침을 해줬던 이들이 전면에 나선다.
유오성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으며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투리는 물론 걸음걸이까지 조직에 오랜 시간 몸 담은 길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는이현균이다. 조직의 행동파 이충섭은 길석에게 알 수 없는 경쟁심을 느끼며 그를 위협하지만, 결국에는 의리를 선택하는 인물이다. 윤영빈 감독은 이충섭 캐릭터를 이현균으로 염두한 후 설계했다. 외모부터 내면까지 이현균은 그 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선과 악의 얼굴을 오가며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케 만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후반부로 갈 수록 늘어지는 전개와 올드하다는 인상이다. 그 동안 많이 봐온 플롯 형태에서 색다른 방향을 모색했지만 예측가능한 결말과 여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지루하다. 하지만 중년 배우들의 다양한 활용과 누가봐도 불편하지 않은 누아르 영화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신인 윤영빈 감독의 탄생이 반갑다. 러닝타임 11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