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銀서 한 달 만에 10조 줄어
금리 인상에 '머니무브' 가속도
국내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규모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불예금은 자유입출금 통장처럼 언제든 고객이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대신 이자를 거의 지급하지 않는 예금으로 은행 입장에서는 싸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다.
금리 인상 본격화로 요구불예금에서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은행권의 이자 마진 확대에 제동을 걸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총 627조3916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1.6%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액수로 따지면 한 달 만에 10조1866억원이나 축소됐다. 또 조사 대상 은행들의 요구불예금이 감소한 건 올해 7월 이후 석 달 만이다.
요구불예금은 예금주가 지급을 원하면 이를 조건 없이 언제든지 내주도록 돼 있는 예금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런 특성을 담아 흔히 수시입출식 예금이라고 불린다.
주요 은행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의 요구불예금이 148조476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5% 줄었다. 우리은행 역시 138조8583억원, 농협은행은 137조9587억원으로 각각 3.1%와 1.7%씩 해당 금액이 감소했다. 신한은행도 121조1863억원, 하나은행은 90조9123억원으로 각각 0.5%씩 요구불예금이 줄었다.
이처럼 지난 달 은행의 요구불예금을 감소로 돌아서게 만든 요인으로는 우선 시기적 특수성이 꼽힌다. 추석이 껴 있었던 지난 9월처럼 통상 큰 명절이 껴 있는 달에 요구불예금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 다음 달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커 보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요구불예금의 약세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요구불예금에 남아 있던 부동자금 중 상당 부분이 금리가 높아진 정기예금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기존 0.50%였던 기준금리를 0.75%로 0.25%p 올렸다. 한은 기준금리가 조정된 건 지난해 5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금리 인상은 2018년 11월 이후 2년 9개월 내 처음이다.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연내 1%까지 기준금리를 상향한 뒤, 내년에도 최소 두 번의 추가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역대급 실적 변수 예고
은행 입장에서 요구불예금의 위축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요구불예금은 은행이 싸게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주요 통로이기 때문이다. 요구불예금은 약정 기간이 없는 만큼, 은행이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가 거의 없거나 매우 낮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요구불예금이 줄어들수록 은행의 이자 마진에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역대급 실적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은행권의 향후 행보에 요구불예금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5대 은행을 거느린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개 금융그룹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거둔 당기순이익은 14조36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3% 급증했다. 5대 금융그룹 모두 3분기만에 지난해 전체 순이익을 뛰어 넘으며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늘어난 대출에 힙임은 이자 수익으로 은행권의 실적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는 금리 인상에 따른 요구불예금 축소를 얼마나 잘 방어하느냐가 수익성을 판가름할 핵심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