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첨단장비 中 반입 반대 기류...“中 군사무기로 악용 가능성”
SK하이닉스 향후 EUV 적용 걸림돌...인텔 낸드 인수 中 승인 눈치도
삼성전자도 생산기지·고객사 감안하면 양국 갈등 장기적 불안 요인
미국과 중국간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도권 갈등이 표면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 불똥이 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공 요구에 이어 중국으로의 첨단 장비 반입에 부정적 기류를 표출하면서 양국 정부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2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전망이다.
당장 가시적으로 구체화되지는 않더라도 양국에 생산시설과 기업고객들이 있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향후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한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 첨단 장비 반입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부정적 기류는 이같은 분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8일 미국 정부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첨단 장비를 반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 노광 장비 등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EUV 기술은 반도체 웨이퍼 원판에 빛을 쪼여 회로 패턴을 그리는 노광(포토)공정에서 활용되는데 극자외선 파장의 광원을 사용한다.
기존 액침불화아르곤(ArF)의 광원보다 파장의 길이가 짧아(10분의 1 미만) 반도체에 더 미세한 나노미터(nm·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회로 패턴을 구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성능과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반도체 업계의 기술력은 EUV 공정이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고도화와 미세공정에서의 경쟁 우위를 위해 EUV 노광장비 확보와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이 최신형 EUV 노광장비를 공급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는 이 장비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네덜란드 정부에도 EUV 중국 수출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사에 등장한 백악관 관계자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군사 현대화에 사용될 수 있는 첨단 반도체 개발에 미국과 동맹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중국 우시 공장에서 D램을 생산하고 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도 우시에서 설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아직 EUV 도입 자체는 시기상조인 상황이다.
회사는 “EUV는 아직 국내에서도 초기 도입 단계로 중국 공장에 구체적으로 적용을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며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며 일축했다.
하지만 로이터의 보도대로 미국 정부의 기조가 향후에도 바뀔 가능성이 없는 만큼 SK하이닉스는 향후 장비 도입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자국 기업인 인텔의 중국 청두 공장에서의 실리콘 웨이퍼 생산 확대 계획을 무산시켰다.
자국 기업에게도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만큼 동맹국인 한국 기업들에게도 동일한 수준의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상황이다.
미국뿐만아니라 중국 정부의 눈치도 살펴야 하는 SK하이닉스로서는 샌드위치 신세에 처할 수 있는 실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인텔 낸드플래시부문 인수 관련, 중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에 인텔 낸드 사업 인수 계약을 체결한 이후 인수합병(M&A) 심사 대상 8개국 중 7개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중국 정부로부터는 받지 못해 최종 완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
7개국 중 마지막으로 싱가포르 경쟁·소비자위원회(CCCS)으로부터 지난 7월 승인을 받은지 4개월이 다 되가지만 중국의 승인은 1년 넘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물론 별개의 사안이기는 하지만 연내 인수 마무리를 원하는 SK하이닉스로서는 최근의 미국과 중국간 갈등 조짐이 반가울리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당장의 상황은 낫지만 불확실성 증대는 달가울수 없다. 삼성전자는 중국 내에는 시안에 낸드플래시 생산라인만을 보유하고 있어 D램과 파운드리 공장에 비해 EUV 공정 도입 가능성은 아직 낮은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난 5월 공식화되고 최종 지역 결정을 앞둔 미국 제 2의 파운드리 공장과 같이 중국 정부로부터도 현지 추가 생산시설 건립 요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 고객사들이 상당히 많은 삼성전자로서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또 SK하이닉스와 함께 지난 9일 미 상무부에 제출한 반도체 공급망 관련 자료에 대한 후속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증 갈등이 증폭될 경우, 양국 정부의 기밀 정보 요구에 계속 시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앞으로도 미국이 중국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커 국내 기업들의 중국 공장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