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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⑲] 운명은 우연의 얼굴로 온다(지헤중)


입력 2021.11.30 14:17 수정 2021.11.30 09:1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거부할 수 없는 끌림, 윤재국과 하영은(왼쪽부터) ⓒ이하 드라마 '지헤중' 홈페이지 포토갤러리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연출 이길복·김재현, 극본 제인, 이하 ‘지헤중’)은 거꾸로 흐르는 드라마다.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좌충우돌 부딪히다 순수한 연인이 되고 사랑의 결실이라는 듯 뜨거운 밤을 보내는 식이 아니고, 화끈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남으로 헤어졌다가 10년 전 시작된 인연임을 알게 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점점 더 순수해진다.


‘지헤중’에서 운명은 중요한 개념이다. 사랑이 어디까지 안 되고, 어디부터 되는지에 대한 다소 위험하고도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드라마이기에 그 경계를 허무는 명분과 논리로 ‘운명’만한 것이 없다.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의 하영은, 윤재국의 흑백 사진에 눈길이 머물고 있다. 영은은 이 사진을 10년간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두었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청춘의 힘겨움을 각인하듯이. 이 우연도 운명의 시작이었을까 ⓒ

10년 전 죽은 이복형 윤수완(신동욱 분)이 사랑했던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 윤재국(장기용 분). 어렵사리 마음을 열었는데 두 달의 꿈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말도 없이 떠난 남자로 인해 다시 마음을 닫아건 여자 하영은(송혜교 분). 닫힌 문의 열쇠를 가진 남자를 10년 만에 만났는데, 하필 10년 전 그 남자의 동생이다. 처음으로 일에 대한 열정을 넘어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곁에 머물고 싶은 여자를 만났는데 형의 연인이었던 여자다.


형의 연인을 사랑해도 될까요, 사랑했던 남자의 동생을 사랑해도 될까요. 꼬일 대로 꼬인 운명을 풀 열쇠로 ‘지헤중’은 운명을 제시한다. 10년 전 형 수완이 영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재국 덕분이었다. 영은에게 전해야 할 포트폴리오가 있는데 다급한 사진사 아르바이트 일이 생겨 형에게 부탁했다. 운명이 1차로 비껴갔다.


고단한 프랑스 유학 시절 영은은 무명 작가가 찍은 암담한 느낌의 사진 한 장을 사서 바라보며 위안을 얻고, 예술적 재능에 자신감이 없는 재국은 사진을 그만두려던 찰나 자신의 사진을 사 준 어떤 여자로 인해 다시 용기를 내고. 두 사람은 각자의 시공간에서 10년의 청춘을 버틸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서로 위안과 용기를 얻으며.


10년이 지난 후, 윤재국이 눈길이 하영은에게 머물고 있다. 누군지 몰라도 알아보는 인연, 이것도 운명의 일부일까 ⓒ

운명의 끈은 둘을 놓아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10년 뒤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에게 홀린 듯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 채 직진했다. 하지만 말했듯 형의 연인, 연인의 동생이라는 얄궂은 운명이 둘을 아프게 했다. 머리는 여기까지라고 말하는데, 마음은 선을 이미 넘고 있다.


얄궂은 운명도 운명이다. 영은과 재국, 두 사람은 비껴간 우연들에서 비극적 운명을 확인하기보다 ‘형보다 먼저 우리가’, ‘지금이 아니라 그때 이미 10년 전에 시작된’ 인연에서 ‘반드시 이어져야 할’ 필연의 운명을 발견한다.


“운명은 우연의 얼굴로 오지. 근데 스치면 우연이고, 잡으면 인연이야.”


하영은의 친구이자 영은을 ‘캔디’로 만드는 ‘이라이자’ 황치숙(최희서 분)이 재국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한 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재국과 영은을 위한 말이 된다. 스쳤던 10년 전 그때의 우연도 운명이었고, 지금 스쳐 보내지 않으려는 지금도 운명인 것이다.


본래 그리될 운명이 뭐 그리 중하냐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찬양한 ‘용비어천가’만 봐도, 세종의 6대조를 추존하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이전의’ 환조, 도조, 익조, 목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물며 한 나라의 건국에도 명분을 주는 ‘그리될 운명’인데, 남녀의 사랑에는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사랑이 담긴다 ⓒ드라마 '지헤중' 홈페이지 PD노트

6화까지 방영된 현재, 두 사람은 우연의 얼굴로 자꾸만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였다. 다만, 둘을 넘어선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의 용인은 가시밭길로 남겨져 있다. 주변과 사회의 반대를 의식한 듯 두 사람은 하나 된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이별을 결승점으로 두고 시작했다.


지금은 이별을 향해 가는 정거장들의 첫 번째를 지나는 것이고, 앞으로 헤어지는 과정들을 겪자고 의기투합했다. 보고 싶어 안절부절 설레는 정거장에서 출발해 싸우기도 하고 미워도 지고 싫증도 나고 환멸이 올 그날을 향해 ‘사랑의 버스’를 출발시켰다. 왜? 과거 연인의 동생, 형의 과거 연인이라는 이유로 오늘 사랑도 못 하는 ‘노선’은 가지 않으려 함이다. 결과가 이별이어도 과정은 소중함을, 사랑은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임을 ‘지헤중’은 말한다.


제목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참뜻이 6회를 보고 난 시점에서야 각성이 됐다. 헤어진 여인을 잊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자의 미련과 아쉬움이 아니라 통속적 사랑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사람들의 애절한 사랑법! 화려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세상 뒤에 감춰진 소박한 사랑 이야기는 한 가지가 아니다. 황치숙을 향한 석도훈(김도훈 분)의 순애보부터 응원한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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