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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건 못하건 'N분의1' 하자는 그들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1.12.20 07:00 수정 2021.12.19 20:36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현대차‧기아 사무‧연구직 고성과자 포상에 노조 반발

"다 같이 나누자"…결국 제도 없애잔 얘기

미래 대응 위한 인재 확보, 생산직 위주 노조에 발목

5만원권 지폐. ⓒ연합뉴스

‘성과 있는 곳에 보상도 있다’.


연말 성과급 지급을 앞두고 자주 들려오는 말이다. 보상을 못 받는 근로자 입장에선 야속할 수 있지만 사실 평가의 공정성만 담보된다면 반발할 근거가 없는 말이기도 하다. 일을 잘하건 못하건 보상이 동일하다면 누가 일을 열심히 하겠는가.


앞뒤를 바꿔, 사용자가 충분한 보상을 제시해야만 성과를 이끌어내고 유능한 인재를 잡아둘 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최근 사무‧연구직 책임매니저들 중 성과가 좋은 직원 10%를 선발해 500만원의 특별 보상금을 지급하는 ‘탤런트 리워드’를 도입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사측과 노동조합간 교섭 결과에 따라 동일하게 임금을 올려 받고 성과급을 나눠 갖는 식으로는 직원들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없음을 절감한 결과다.


사실 이런 식의 차등적 성과보상은 진작부터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기업 규모나 재계에서의 지위에 비해 부족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사무‧연구직군 직원들의 이탈로 홍역을 치렀다.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이 자신들보다 규모가 작은 IT 기업으로 인재를 빼앗겼으니 자존심에 생채기가 날 법도 한 일이다.


자존심보다 큰 문제는 미래 사업 대응이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각종 미래사업을 추진해나가야 할 시기에 핵심 연구 인력들이 유출된다는 건 치명적이다.


사무‧연구직군 직원들의 임금체계 개선 요구도 있었다. 비슷한 커리어의 IT기업 직원들이 연말이면 수천만원씩 목돈을 챙기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데 자신들은 생산직 위주 노조와의 교섭 결과물을 ‘평등하게(개별 성과와 무관하게)’ 적용받는 걸로 만족할 리 없다.


이같은 요구는 지난 3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타운홀 미팅’을 통해 강한 어조로 전달됐고, 정 회장은 각 계열사 대표들에게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이번 ‘탤런트 리워드’ 도입도 그 일환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노조의 반발이다. 현대차 노조는 사측에 ‘탤런트 리워드는 단체협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공문을 보냈다. 기아 노조는 전 조합원에게 동일한 포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지난 2일부터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줄 것이라면 다 주고, 아니면 아예 주지 말라는, 철저한 ‘N분의1’ 정신이다.


사측은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닌 책임매니저급 직원들에게 지급한 것이기 때문에, 단협 위반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노조가 원한다면 노조원들도 제도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노조원들까지 차등적 성과 보상 지급 대상에 포함시키면 문제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현실적으로 생산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생산 라인에서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는 이들의 성과를 무슨 수로 평가한단 말인가.


반면, 노조원 중에서도 성과 평가가 가능한 사무‧연구직군 매니저급 직원들은 탤런트 리워드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책임매니저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타당해 보이지만 생산직 노조와 묶여 있는 관계로 단협상 문제가 된다. 이번 탤런트 리워드에서 그들이 빠진 이유다.


설령 사무‧연구직군 노조원들이 이 제도 수용을 원한다고 해도 생산직이 절대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노조 구성상 집행부가 받아들일 리 없다.


노조의 주장은 ‘내가 못 받을 바엔 남이 받는 꼴도 못 보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수백 명이었던 보상금 지급 대상이 수만 명으로 늘어난다면 무슨 수로 보상 제도를 유지하겠는가. 그냥 제도를 없애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결국 노조의 요구대로라면 앞으로도 현대차그룹 내에서 ‘일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더 주는’ 제도는 자리 잡을 수 없다. 미래 성장을 책임질 인재 유출도 막을 수 없다.


회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나아가 자신들의 일자리 안정을 원한다면 사무‧연구직군 노조원들까지 포함한 차등적 성과 보상을 생산직 위주의 노조가 수용할 필요가 있다.


직군 차별이라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생각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군 중에서는 이직하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이 많지만 유감스럽게도 생산직은 그렇지 못한 게 냉정한 현실이다. 필요한 인력을 잡아두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걸 두고 배 아파 할 일이 아니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게 만든 생산직 근로자들의 공로는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더 도약하려면, 적어도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생산 현장보다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젊고 유능한 후배들이 좀 더 큰 역할을 해야 됨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좋은 성과를 낸 대가로 보상을 받는 것에 박수를 보낼 아량을 보일 필요가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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