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보도자료까지…도 넘은 유출 수위
단단한 빗장 걸고 ‘언팩’ 의미 지켜주길
수천명이 운집한 행사장. 삼성전자가 새 모바일 제품과 기술을 발표할 때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불과 2년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 삼성 언팩(공개) 행사장의 풍경이다.
아쉽게도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난 2020년 2월 언팩 취재 차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기술을 공개하는 순간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체험존에는 먼저 제품을 보도하려는 외신 경쟁이 치열했다.
이후 모든 행사가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더 이상 현장에서의 열기는 느낄 수 없게 됐다. 이는 비단 삼성전자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애플이나 중국 제조사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코로나19 탓에 신제품 공개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해 진행하고 있다.
전날 모니터 화면으로 ‘갤럭시S22’이 공개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현실감이 없고 제품의 실물을 독자들에게 바로 전달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물 영접’ 기회 박탈보다 더 김이 새게 만드는 건 언팩된 제품이 전혀 새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용물의 형태는 물론 스펙까지 미리 아는 상태에서 포장을 뜯어 봐야 감흥이 있을 리 없다.
최근 들어 정보기술(IT) 팁스터들의 기기 정보 유출 행태를 보면 아쉬움을 넘어 기업의 주요 정보를 빼돌려 퍼트리는 범죄 행위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보의 수위가 단순히 언팩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을 넘어 기업의 경영에 크나큰 폐를 끼치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다른 제조사 제품들도 일부 정보가 유출되긴 하지만, 삼성전자 모바일 제품 정보 유출은 유독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하고 정확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심지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유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 자체적으로도 인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 모두 인정하고 공감하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행사에 찬물을 끼얹듯 언팩 직전 공식 보도자료와 스펙 시트까지 모조리 유출됐다. 삼성전자 제품 정보 유출로 이름을 알린 팁스터 에반 블래스는 이 자료를 공개하면서 “보통 때였다면 행사 직전에 언론 보도용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회사를 조롱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삼성전자도 유출에 손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유명 IT팁스터 맥스 잼버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삼성전자가 출시 전 제품 사진, 동영상 등에 대한 저작권 침해 대응에 나섰다”며 “며칠에 걸쳐 유출 사진을 삭제한다”고 언급한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후 유출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정보 유출을 단속하지 않고 일부러 사전에 정보를 흘리면서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반년에 걸쳐 정보가 줄줄 새다가 언팩 직전 모조리 유출되는 게 삼성전자의 의도였을 것이라고 납득하기는 어렵다. 1년간 혁신 기술을 내놓기 위해 신제품 개발에 매진했을 임직원들의 상실감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갤럭시 팬들에게 언팩은 손꼽아 기다리는 하나의 큰 연간 이벤트다. 하지만 내용물의 미지성(未知性)이 제거된다면 포장을 푸는 설렘 역시 기대할 수 없다. 협력사가 하도 많아 단속할 곳도 많겠지만 고생한 임직원과 고대했던 팬들을 위해서라도 삼성전자가 좀 더 단단한 빗장을 걸고 팁스터들로부터 언팩의 진정한 의미를 지켜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