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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⑳] 노동자 죽어도 대표는 '무죄'…"중대재해법 필요성 거듭 입증"


입력 2022.02.13 06:23 수정 2022.02.12 10:46        김수민 기자 (sum@dailian.co.kr)

하청업체 등 대부분 집행유예…원·하청 기업 법인 2곳에도 벌금 선고

재판부 "각종 위반행위 결합돼 난 사고…대표, 위험성 등 구체적으로 인식 어려워 무죄"

노동계 "재판부, 죽은 사람 있는데 책임져야 할 사람 없다고 판단…이윤 추구 우선 인정"

법조계 "중대재해법 , 최고경영자 위험성 몰랐다고 면책사유 안돼…사법부 전반 인식개선 필요"

10일 오후 대전지법 서산지원 앞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노동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작업 도중 숨진 한국서부발전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건과 관련해 원청업체 전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노동계의 거센 반발 속에 법조계는 이번 판결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이 또다시 증명됐다며, 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사법부의 인식 개선과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는 10일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 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했다.


함께 기소된 나머지 서부발전 관계자 7명에게 금고 6개월∼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200시간과 한국발전기술 관계자 5명에게는 벌금 700만원∼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200시간을 내렸다. 별도로 이들 원·하청 기업 법인 2곳에도 각각 벌금 1000만∼1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누구보다 성실히 근무해온 입사 3개월밖에 되지 않은 김씨가 사고로 참혹하게 숨진 죄책이 가볍지 않고 이로 인한 유족의 고통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누구 한 사람보다는) 피고인들의 각종 위반 행위가 결합돼 사고가 났고, 초범이고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은 적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김 전 대표에 대해서는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컨베이어벨트와 관련한 위험성이나 한국발전기술과의 위탁용역계약상 문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워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려워 무죄로 판단했다.


10일 오후 무죄 선고를 받은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가 대전지법 서산지원을 나와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은 분명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재판부가 죽은 사람은 있지만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없다고 판단을 내려 노동자들에게 아직도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는 "개정 전의 산업안전보건법에도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재판부의 법 해석으로는 아무리 법을 개정하고 새로 만들어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있다"며 "일터 죽음을 막는 일에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책임지도록 재판부가 엄정한 법 적용을 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법조계는 사고의 위험성을 몰랐다는 주장이 면책사유가 될 수 없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고 김용균 씨의 사고에도 적용됐다면 판결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김용균특조위 간사였던 권영국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통해 사고의 위험성을 몰랐다는 최고경영자의 변명이 통하지 않도록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사고는 (김 전 대표) 취임 후 10개월이 지난 후에 발생했고, 발전소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컨베이어벨트인데 (위험성을) 몰랐다는 것 자체가 이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발전소 시설 개선의 승인 권한은 서부발전에 있고 컨베이어벨트 방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제공한 것 역시 서부발전"이라며 "특히, 2인 1조 근무가 불가능할 만큼의 용역비 예산을 결정한 최종 결정권자도 서부발전 경영자인데 모른다고 주장만 하면 무죄가 나오는 것이 문제"라고 질타했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기존 법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판결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며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형법은 소급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손 변호사는 "이전에 유사한 사고가 있어서 (안전 상태가) 부실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태안발전소에서도 과거 여러 차례 유사한 사망사고가 발생했기에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노동법 관련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중대 재해에 대한 사법부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노동법 전문가 김남석 변호사는 "산업재해가 일어나도 이에 따른 형이 약하다는 지적은 항상 제기되고 있는데 아직 안전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이 그만큼 낮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의 사고와 관련해 사법부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도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최고경영자가 사고의 위험성을 몰랐다는 점이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이 법이 잘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법원과 검찰도 자신들이 안전 사회로 나아가는 길의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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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기자 (su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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