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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인재 이탈 어쩌나…현대차의 씁쓸한 격려금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2.03.07 07:00 수정 2022.03.07 09:2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400만원 특별격려금 지급에 , 노조 "차등 성과급 분쇄" 과시

현대모비스‧현대제철 노조도 동일 금액 지급 요구

고급 R&D 인력 잡아둘 보상 지급시마다 노조 반발로 진통 우려

기아 노조가 사측의 고성과자에 대한 특별 보상금 지급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지난 2일.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전 직원에게 400만원의 특별격려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려운 대외 경영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품질‧안전‧상품성 등 글로벌 시장에서 거둔 눈부신 성과의 결실을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측은 격려금 지급을 ‘투쟁의 결과물’이자 ‘사측의 백기투항’으로 해석했다. 이날 기아 노조는 “3만 조합원의 단결된 결의와 집행부의 확고한 의지로 차등 성과급을 분쇄하고 400만원 지급을 쟁취했다”면서 “양재동 1인시위와 출퇴근 선전전, 현장투쟁 등 다양한 투쟁 전술로 사측을 압박해 자존심을 지켜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회사측이 사무‧연구직 책임매니저들 중 성과가 좋은 직원 10%를 선발해 500만원의 특별 보상금을 지급한 ‘탤런트 리워드’를 두고 노조가 ‘전 직원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해 왔는데, 결국 그걸 받아냈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이번 특별격려금이 탤런트 리워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결국 ‘성과가 높은 이에게만 보상을 지급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주장을 관철시킨 셈이 됐다.


‘투쟁하니 돈을 내놓더라’는 현대차‧기아 노조 집행부의 성과(?) 과시는 다른 계열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 노조는 연이어 성명을 내고 자신들에게도 동일하게 4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현대차‧기아가 특별격려금을 지급한 4일에는 현대모비스 노조 3개 지역 조직(울산, 진천, 창원) 집행부가 서울 역삼동 현대모비스 본사가 위치한 SI타워 로비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누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차등적 성과보상은 집어 치우고 다같이 ‘N분의 1’ 하자는 식이 됐다.


이번 특별격려금 논란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올해 연말이다.


지난 연말 현대차‧기아가 탤런트 리워드를 도입한 것은 사무‧연구직군에 대한 정당한 성과보상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내부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생산직 위주 노조가 사측과 교섭을 통해 도출한 결과물을 ‘평등하게(개별 성과와 무관하게)’ 적용받는 식의 임금 구조로 인해 현대차‧기아는 전체 임금수준은 높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연구직군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이 됐다.


이는 사무‧연구직 직원들의 대량 이탈로 이어졌다. 그들의 상당수는 현대차‧기아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IT 기업들로 자리를 옮겼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 각종 미래사업을 추진해야 할 시기에 핵심 연구 인력의 유출은 심각한 타격이다.


결국 성과에 걸맞은 보상을 통해 이들을 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도입한 게 탤런트 리워드다. IT 기업들이 고급 인력에게 제시하는 대우를 생산직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게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고성과자에 대한 특별 보상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같은 차등적 성과보상이 ‘단협 위반’이라며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고, 이번 특별격려금을 ‘차등 성과급 분쇄’로 정의했다.


‘이번 특별격려금은 탤런트 리워드와 연관성이 없다’는 사측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고성과자에 대해 보상을 지급하면 전 직원, 나아가 다른 계열사 직원들까지 손을 내미는 전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현대차‧기아가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낸 사무‧연구직원들을 만족시킬 만한 보상을 지급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의 보상이건 노조가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몸값’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에 생산직 근로자와 동일 임금으로 묶인 고급 인재들의 이탈을 막아야 하는 현대차‧기아 경영진의 고민이 커 보인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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