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인터넷으로 주문한 헬륨가스 마신 인천 중학생 질식사
전문가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 헬륨가스 등 자극적 콘텐츠에 노출 쉬워…인터넷서 쉽게 구입"
"헬륨가스, 유해물질로 미등록…산소 차단해 질식사 위험 높고 극단 선택도구 사용 우려"
"유해물질 분류 전수조사 필요…구매시 경고문구·성인인증·결제단계 강화 등 규제 배가해야"
청소년이 헬륨가스를 마시다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헬륨가스를 마시면 목소리가 변한다는 이유로 장난삼아 구매하는 일이 자주 반복되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헬륨가스를 유해 물질로 분류할지 우선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헬륨가스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만큼 구매시 경고문구와 성인인증을 활성화하고, 결제단계에서 거듭 주의를 주며 까다롭게 하는 등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5일 인천 한 아파트에서 중학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헬륨가스를 들이마셨다가 질식해 숨졌다. 인천소방안전본부와 인천 남동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50분쯤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 작은방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중학생 A(13)군을 외출했다가 귀가한 그의 부모가 발견했다. A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A군 부모는 '아이가 평소 장난기가 많았는데 택배로 헬륨가스를 주문했다'고 했다"며 "극단적 선택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018년 8월 경남 함안에서도 중학생 2명이 애드벌룬에 있는 헬륨가스를 마시고 목소리를 변조시키는 장난을 하다 질식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보면, 헬륨가스를 들이마시고 목소리가 변하는 장난을 하거나 헬륨가스를 놀이 도구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헬륨가스를 쉽게 접한 청소년들은 호기심에 자주 구매하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생기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놀거리를 찾다가 위험한 유혹에 빠져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자극적이고 위험한 콘텐츠들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호기심 많은 청소년이 아무 의심 없이 따라 해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음주나 흡연 등이 포함된 콘텐츠는 유해 콘텐츠로 경고할 수 있지만, 헬륨가스는 유해 물질로 등록돼있지 않아 청소년에게 노출되기 쉽다"며 "헬륨가스와 관련된 콘텐츠는 법망을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업 시간에 흥미 유발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는 헬륨가스는 현재 유해 물질로 구분되지 않아 미성년자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헬륨가스를 유해 물질로 구분할지 점검해봐야 한다며 구매 단계에서의 규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헬륨가스 자체가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며 "산소 대신 헬륨가스가 폐를 가득 채워 산소의 흡수를 차단해 질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교육 현장에서도 헬륨가스가 굉장한 의미를 가진 물질처럼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 대단한 과학적 의미가 있지도 않다"며 "교육과 미디어 등에서 헬륨이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또한 헬륨은 소중한 자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놀이로 소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헬륨가스의 무분별한 구매가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자칫 '극단적 선택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임 교수는 "헬륨가스를 마심으로써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며 "극단적 선택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해 물질 중 30%만이 법적으로 유해하다고 규정돼 있다"며 "이번 사고를 통해 유해 물질, 유해 콘텐츠로 분류할 수 있도록 전수조사를 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헬륨 구매 시 눈에 띌 수 있도록 정해진 규격에 따라 경고 문구를 명시하도록 해야 하고, 결제 단계에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성인 인증을 한 후에 구매할 수 있도록 당국에서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