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98조4천억…1년 새 11조↑
이익 분배 두고 시장-정부 '힘싸움'
국내 4대 금융그룹이 회사 내에 쌓아둔 남은 이익이 최근 1년 새 10조원 넘게 불어나며 사상 첫 100조원 고지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히 몸집을 불린 대출과 그에 따른 이자 수익이 금융사 곳간을 가득 채운 모습이다.
다만 금융그룹은 이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겠다며 주주 친화 메시지를 내고 있는 반면, 금융당국은 코로나19 리스크 대응을 이유로 배당 자제를 요구하면서 금융사의 잉여금을 둘러싼 시장과 정부 간 줄다리기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개 금융그룹의 이익잉여금은 총 98조4309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2.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액수로 따지면 10조9032억원이나 증가했다.
금융그룹의 이 같은 이익잉여금 규모는 역대 최대 기록으로, 올해 중 역대 최초 100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 가운데 배당이나 상여금 등의 형태로 유출시키지 않고 사내에 쌓아둔 유보금을 가리킨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우선 신한금융의 이익잉여금이 30조5413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0.0% 늘었다. KB금융 역시 25조6728억원으로, 우리금융은 21조3926억원으로 각각 13.9%와 11.0%씩 해당 금액이 증가했다. 하나금융의 이익잉여금도 20조8242억원으로 16.1% 늘었다.
이익잉여금 급증 배경에는 눈에 띄게 개선된 실적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생계형 자금 수요에 이른바 영끌·빚투로 대변되는 투자 열풍이 더해지면서 불어난 대출은 금융사의 이자수익 확대를 떠받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조사 대상 금융그룹이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은 총 14조5428억원으로 전년 대비 34.3% 급증했다. 이들이 거둔 이자이익은 32조2643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4.9%나 늘며 역대 최대를 나타냈다.
금융그룹들은 여유 있는 이익잉여금을 바탕으로 주주 가치 제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중간배당을 넘어 분기배당을 약속하는 등 주주의 마음을 얻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신한금융은 이미 지난해부터 분기배당을 실시 중이다. KB금융은 지난 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올해 현금·현물배당을 위한 주주 명부 폐쇄를 결정하고 분기 배당 검토에 들어갔다.
우리금융은 주총에서 중간배당 기준일을 6월 30일로 명시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확정하면서, 지난해 처음 이뤄진 중간배당을 정례화 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부터 중간배당을 해온 하나금융은 이를 분기배당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정책적 요구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대출 부실 우려를 방어하기 위해 금융사의 대손충당금 적립을 직간접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주주에게 돌아갈 배당금은 축소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그룹 배당의 핵심 재원을 담당하는 은행은 직접적인 당국의 압력에 직면한 상황이다. 은행권은 최근 금융감독원의 권고에 따라 신용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과 코로나19 취약업종 대출에 대해 8760억원의 대손준비금을 추가 적립하기로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그룹으로서는 날로 커지는 주주의 배당 수요를 충족시켜 주겠다는 입장을 공언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리스크 대응 강화 방침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