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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⑳] ‘돼지의 왕’ 김동욱, 주연배우와 주제의식


입력 2022.04.13 14:33 수정 2023.05.19 01:1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 황경민으로 분한 배우 김동욱 ⓒ이하 티빙 제공

‘돼지의 왕’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1년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감독 연상호). 당시 과감한 이야기 전개, 사실감 넘치는 스토리와 그림체, 생생한 캐릭터의 매력에 푹 빠져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에 그 아프고도 잔인함이 불가피한 내용을 영상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대보다는 주저가 일었다. 배우 김동욱 캐스팅 소식에 피해 갈 수 없는 드라마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 매 작품 진심으로, 마음의 모양새부터 바꿔 캐릭터에 집중하는 배우임을 알기에 김동욱의 새로운 모습은 기대를 키운다.


물론 드라마 ‘돼지의 왕’(연출 김대진·김상우, PD 김경규, 극본 탁재영), 보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모든 회차를 당연히 다 봤다. 한 편으로는 마치 처음 보는 이야기처럼 흥미진진 드라마를 따라가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계속 질문 한 가지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배우 김동욱은 황경민 캐릭터에 적절한 캐스팅인가.


카메라가 돌기 전, 특유의 해맑은 모습으로 준비 중인 배우 김동욱 ⓒ

연기를 못해서? 물론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다. 진짜 겪은 일인 듯 캐릭터 트라우마가 남는 건 아닐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 만큼 캐릭터 구현이 대단하다.


끊어내기 어려운 질문의 핵심은 이렇다. 배우 김동욱이 스크린과 안방극장 등 여러 작품 안팎에서 자연스레 구축해온 이미지가 있다. 올바르고 따뜻하고 눈물 많고 정겨운 사람. 그런데 김동욱을 몸을 빌린 황경민은 복수한다. 법으로 인간의 윤리로 금지된 사적 복수. 치밀하게 준비해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실행한다. 깨끗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복수하니 더 무섭고 더 치가 떨린다.


그런데 어느새 응원하고 있다. 그가 중학교 시절 겪었던 입에 담을 수 없는 치욕과 모욕과 인간 이하 취급을 ‘내 기억’처럼 떠올리며 그 타당함에 동의한다. 그러다 깜짝 놀란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사람이 사람을 죽일 어떠한 명분은 결코 없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적 복수가 횡행하는 건 사회를 안심하고 살 만한 곳이 못 되게 하고 인간을 타락시킬 뿐이다.


카메라가 돌면, 얼굴 근육 위치부터 바꿔 황경민이 되는 배우 김동욱 ⓒ

마음과 마음이 싸운다. 그럼 당하고만 있어야 해? 가해자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세상인 게 정의인가. 그 바탕에는 법이,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권하는 법이, 그렇게 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확대하고 존중한다고 판단하는 법이, 피해자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에 잘못된 방법으로 행하는 피해자의 복수에 심적 동정을 보내는 측면이 있다.


자꾸만 황경민의 복수에 비난보다는 이해를 동반하는 자신을 의식하며 괜스레 배우에게 책임을 돌린다. 너무 선한 얼굴로, 너무 공감도 높고 깊게 연기하니 이렇게 응원하는 거잖아요. 또 연출자를 원망한다. 왜, 배우 김동욱을 캐스팅했어, 이렇게 우리가 피해자의 복수를 응원하라고 선택한 거죠?


다시 생각한다. 그렇다면, 악하고 거친 이미지를 지닌 배우를 캐스팅했어야 하는가. 공감받기도 응원하기도 어려운 피해자를 만들었어야 했나.


배우 김동욱은 이야기 설정이 내포한 위험성의 '허들'을 시청자가 넘을 수 있게 한다ⓒ

사실, 피해자의 슬픔과 피해자의 사적 복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시청자가 뛰어넘도록 작가와 연출자는 피해자가 당한 괴로움을 더욱 세밀하게 더욱 현실감 있게 더욱 잔인하게 그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호감도 높은 배우, 인성에 기댈 수 있는 배우의 매력이 ‘허들’을 훌쩍 넘게 한다. 피해=복수의 등식이 성립할 수 없는 진리 안에서, 당했다고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위험성을 ‘배우의 설득력’으로 타개한다. 그런 측면에서 배우 김동욱은 합당하고도 ‘베스트’인 캐스팅이다.


중요한 것은, 배우 김동욱이 핏빛 복수를 감행하는 황경민에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고심이 단지 적절한 캐스팅 여부의 차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심을 계속 머리에 달고 ‘돼지의 왕’을 시청하노라면 학교폭력의 심각성, 학교와 가정 등에서 어른의 잘못이 미성년에게 부르는 비극, 사적 복수의 타당성, 법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 유전무죄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관한 ‘나의 가치관’을 검증하게 된다. 김동욱이라는, 너무나 적절하고 너무나 예민한 캐스팅이 가져오는 ‘주제 의식 심화’ 효과다.


침묵한 이들도 개(가해자)이자 돼지(피해자)이다. 황경민은 김철에 이어 돼지들의 왕이 되려는 걸까 ⓒ

생각이 그즈음에 이르며 깨닫게 된다. 아, ‘김동욱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연출자들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배우 김동욱도 이를 알고 출연을 결심했구나. 드라마 ‘너는 나의 봄’으로 만난 ‘우리 마음의 상처에 치유의 연고를 바르는 정신과 의사’ 주영도를 떠나보내며 “이제 영도와는 너무 다른 경민이가 되어야 한다”던 김동욱의 의기가 빚어낸 인물 황경민을 이제 이틀 뒤면(매주 금요일) 만날 수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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