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기준 27개국 780건 감염…정부, 8일 코로나19와 동급인 '2급 감염병' 지정
해외여행객 "코로나19 때 무분별한 신상털이 생각나 감염시 1호 확진자 낙인 두려워"
전문가 "동성 간 감염 보도로 성차별 문제마저 우려…2차 가해 지양하고 개인정보 철저히 보호해야"
"전파 경로 명확하고 아주 밀접한 접촉으로 감염되는 질병…확진자 1000명 미만, 충분히 관리 가능"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원숭이두창의 국내 확진자가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원숭이두창 감염에 대한 두려움보다 '1호 확진자'가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개인 신상털이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원숭이두창이 동성 간 접촉으로 확산됐다는 보도가 있어 성차별 문제마저 우려된다며 신상털이가 두려워 증상을 감추지 않도록 개인정보 유출을 철저하게 지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일(현지시각) 비풍토병지역 27개국에서 780건의 원숭이두창 감염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방역당국은 8일부터 원숭이두창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동급인 2급 감염병으로 지정하고 국내 유입 감시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숭이두창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생소한 질병이어서 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확진자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신상털이를 당했던 기억이 시민들 뇌리에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여행을 준비 중인 사람들이 불안하다.
미국 출장 중인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출장을 나서면서 혹시 내가 원숭이두창에 걸리게 돼 받게 될 사회적 시선이 걱정됐다"며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개인 방역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원숭이두창과 관련해서 동성애 논란 등의 오해에 노출될까봐 더욱 두렵다"며 "방역을 위해 투명한 정보 공개는 이해하지만,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에도 균형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동남아로 휴가를 떠나는 이모(28)씨는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일정을 좋아하는데, 원숭이두창 감염 우려 때문에 아쉽지만 이번에는 자제하기로 했다"며 "특히, 코로나19 때처럼 떼거지로 몰려서 낙인을 찍는 '낙인 효과'가 무섭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숨긴다고 숨겨지는 질병은 아니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난다면 무조건 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는 간다"며 "전염병은 재수가 없으면 걸릴 수 있다고 본다. 누가 걸리든 죽일 듯이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내가 확진자가 될 수도 있는 문제'라며 확진자 신상털이로 인한 2차 가해를 우려했다. 또한 원숭이두창은 전파 속도가 느리고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기 때문에 차분하게 대응할 것을 제안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동성애로 인해 확산한 게 아니라는 보도도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선입견을 갖고 확진자를 바라볼 수 있다"며 "동성애에 대한 차별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확진자가 나올 텐데 주변 사람들에 의해 신상이 공개되면 2차 가해가 된다. 1호 확진자가 누가 되는지 간에 개인 정보에 관한 부분을 철저히 보호해줘야 한다"며 "나와 관련이 없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문제고, 신상공개 등의 이슈가 생기면 증상이 나타나도 아예 숨길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외국에서 발생한 다수의 확진 사례가 남성들이다 보니 확진시 오해나 성차별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보니 더 걱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파 경로도 명확하고 아주 밀접한 접촉이 일어나야 감염되는 질병이다.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도 아직 확진자가 1000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며 "증상 사진 때문에 겁먹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도 천연두가 비슷한 식으로 유행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차분하게 대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