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재가 없이 인사 초안 고액한 경찰
강도 높은 단어 사용해 경고 메시지
김창룡 경찰청장 '사퇴 권고' 분석도
尹의 경찰 다잡기 해석…민주당 반발에 여야 충돌 우려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 논란을 빚은 경찰을 향해 '국기문란'이라는 강도 높은 단어를 사용하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추진을 두고 '경찰 통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갈등이 커질 경우 자칫 여야 갈등으로 번져 향후 정국의 뇌관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인사 번복이 됐다는 보고를 받고 어떻게 됐는지 알아봤더니 참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경찰에서 자체적으로 행안부체 추천한 인사를 그냥 고지해 버린 것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에 어떻게 보면 국기문란"이라 맹비난했다.
문제가 된 인사 번복 사태의 시작은 1주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치권에 따르면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청에서 행안부로 파견된 치안정책관을 통해 치안감 인사 희망안을 행안부에 제출했고, 조지아 출장을 앞뒀던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해당 초안을 토대로 대통령실 측과 조율해 최종안을 마련한 뒤 지난 16일 출국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치안정책관이 경찰청에 최종안이 아닌 초안을 보내며 "대통령실과 협의해 결재를 준비하라"고 전했고, 경찰청은 대통령실과의 의견 조율 없이 초안 그대로 인사를 발표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대통령실은 경찰 측이 윤 대통령의 결재를 건너뛰고 초안에 따라 덜컥 인사를 발표한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 측이 "뒤늦게 오류를 발견했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단순 행정 실수라고 보기엔 문제의 사태가 벌어진 지난 21일 행안부에서 경찰국 신설을 포함한 경찰 통제안을 발표한 점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유출됐다가 번복된 것처럼 나가는 것 자체가 중대한 국기문란이 아니면 공무원으로서는 할 수 없는 과오로, 황당한 상황"이라며 "언론에서는 치안감 인사가 번복됐다는데 번복되거나 한 적은 없고, 올라온 대로 승인했다"고 강조했다.
'국기문란'이라는 수위 높은 단어를 써가며 윤 대통령이 경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배경에는 '경찰 책임론'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경찰국 신설에 대한 경찰 측의 불만 기류가 커지는 상황에 대한 사전 기선제압의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사실상 김창룡 경찰청장을 향해 우회적으로 자진사퇴 권고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은 경찰국 설치가 경찰의 독립성·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찰보다 중립성과 독립성이 더욱 강하게 요구되는 검찰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두고 있다"며 "행안부가 필요한 지휘, 통제를 하고 독립성과 중립성이 꼭 요구되는 사무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같은 상황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며 여야의 공방전으로 확전되는 양상이 감지된다.
민주당은 경찰이 공개했던 초안과 이후 번복된 최종안을 비교해 볼 때,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됐던 치안감을 요직에서 한직으로 밀려난 반면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됐던 경찰은 요직을 꿰찼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향후 별도의 TF까지 구성해 진실규명 작업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황이다.
반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찰이 대통령과 행안부를 패싱하고 인사 발표한 것을 바로잡자, 인사 번복·인사 참사라는 프레임으로 민주당과 일부 언론에서 프레임을 걸고 있다"며 "모든 권력은 견제 받아야 한다.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부패하게 돼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일각에선 윤 대통령 측이 경찰을 향해 추가적인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단, 대통령실은 현 시점에서 정해진 사안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기 문란'이라 말한 것은 중대한 실수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지금 상황에서 확인해 드릴 만한 내용이 없다"며 "일단 경찰 쪽에서 먼저 조사가 있어야 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