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들과 호흡 안 맞아 기관 비효율화 심화
'KDI 대변하지 못하는 인물' 내부 반대에 봉착
재임 기간 내내 KDI 내부조직 장악에도 실패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경제 발전과 선진화 초석을 마련한 대한민국 최고 싱크탱크다. 한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국가 경제 번영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1971년 3월 설립됐다.
최근 짧은 텀으로 정권교체가 반복된 가운데 KDI 수장에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이 등용되면서 지성의 요람인 KDI가 정치 집단화되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이 존재했다.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두고 지난 15일 사임한 홍장표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으로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그가 KDI 원장으로 임명될 때 'KDI를 대변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지적과 함께 내부 반대에 봉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주류인 후기 케인스학파로 분류되는 홍 원장의 소주성은 KDI 주류를 이루던 정통파 경제학자들에겐 한물 간 낡은 이론에 불과했다.
전 정부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던 작년 5월 KDI 출신 원로 학자들의 홍 원장 선임 반대에도 정부가 임명을 강행하자 KDI의 자존심을 구겼다는 말도 나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홍 원장 취임 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보고서에 대한 자체 검열이 심화되면서 내부 불만을 격화시켰다. 한 KDI 현직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는 당초 기획재정부 기자단 브리핑을 통해 공개돼왔으나 홍 원장 취임 이후 언론을 매개로 한 발표를 막아왔다"며 "정권 비판뿐만 아니라 진보적 성향을 띤 보고서도 제한된 형식으로 공개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연구위원은 "리더인 홍 원장과 전체 연구원들간 전혀 호흡을 맞추지 못하며 기관의 비효율화를 심화시키는데 일조했다"며 "홍 원장 취임 이후 정책 연구 보고서 발간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던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장과 연구원들 호흡은 연구소 전체 효율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리더인 연구원장은 전체 연구원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계통의 사람이 채용돼야 하지만 홍 전 원장이 역점을 뒀던 주장은 지금까지 KDI 연구 트렌드와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다만 홍 원장은 KDI 조직을 장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KDI 내부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소주성 창시자가 KDI에 오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주력 분야를 연구 과제에 포함시킬 것으로 예상한다"며 "실제로 홍 원장이 부임한 뒤 KDI 내부 분위기 파악부터 나섰지만 KDI 연구자 개개인의 자부심이 대단하고 목소리에 힘이 있어 그 정도 수준까지는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KDI는 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4개 국책연구기관 중 하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유사한 다른 연구기관이 특정 분야에 특화돼있다면 KDI는 융복합 협업 연구를 진행하는 종합정책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KDI 특성상 특정 연구를 수행해 발표 또는 배포하기 전 내부 공론화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특정 시각이 아닌 종합적인 시각을 담아내는 종합연구원의 장점이다. 이 떄문에 압력을 행사해 정치성 성향에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보고서 연구과제를 끌고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공석인 KDI 원장 인사는 KDI가 소속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 교체된 이후에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당은 정해구 현 경사연 이사장에 대해 "신 정부와 경제철학을 같이하지 못하는 분"이라며 전방위적으로 사퇴 압박에 나서고 있지만 정 이사장은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한 KDI 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국책연구기관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누르려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며 "특정 정치적 성향보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진정한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을 KDI 원장으로 중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