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광복절에 뭘 생각할까
표 얻어주려 구걸하듯 했는데
망할 작정이라면 뭔들 못할까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77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을 세운 날로부터는 74년이 지났다. 치욕·통한·질곡·참혹의 35년을 견뎌 마침내 일제의 강점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온전히 우리 힘으로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선열들의 염원과 희생으로 벗겨낼 수 있었던 이민족의 압제였다. 그러나 겨레의 집단적 시련은 거기서 끝나주지 않았다. 한반도 북쪽지역을 장악한 (구)소련군이 급조해낸 김일성 정권이 해방어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전면남침이라는 민족적 범죄를 자행했다. ‘국토완정’의 미명아래 동족 살육극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광복절에 뭘 생각할까
전화(戰禍)가 핥고 지나간 폐허 위에서 겨레는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 오늘에 이르렀다. 불과 한두 세대 만에 우리는 ‘세계사적인 기적’을 이뤄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고 말면 억울하다. 운명의 희롱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는 장엄한 생존과 재기의 행군으로 이겨냈다. 민족적·국민적 대서사였다. 이걸 어떻게 ‘기적’이라는 타자적 정의(定義)에 매몰시키고 말 것인가.
어제는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 봉송식이 열렸다. 서울 수유리 광복군 합동 묘소에 안장돼 있던 고 김유신 지사 등 17위 선열들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기 위한 봉송행사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그분들의 순국정신을 기렸다. 그는 끝으로 “무명의 희생과 헌신도 국가의 이름으로 끝까지 챙기고 기억할 것”임을 다짐했다.
순국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되찾고 지켜준 나라에서 국가 경영의 책임을 진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거드름을 피우고 지내는지, 늘 그렇지만 특히 이런 날을 맞으면 더욱 궁금하다. 선거운동 기간 눈물 콧물 아끼지 않고 흘리며 다짐하던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가. 혹 당선 된 순간부터 고개 빳빳이 쳐들고 오히려 유권자들의 인사를 받으려 하거나, 더 큰 잇속 챙기기에 안달하는 사람은 없는가.
고향후배가 전화로 정치상황, 특히 국민의힘 동향을 물어 왔다. 드물지 않게 오는 전화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필자보다 훨씬 정확하게 또 많이 꿰뚫고 있으면서도 동조나 공분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표 얻어주려 구걸하듯 했는데
70에 바짝 다가든 나이인데 목소리나 어투엔 화가 잔뜩 차 있다. 좀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갈수록 해괴한 위세 자랑에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못 견디겠다고 한다.
“아니, 이 꼴 보려고 정권교체에 그처럼 안간힘을 썼는지 억울해서 못 견디겠네요.”
이 대표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을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말한 것에 특히 화가 치밀었던 듯하다.
“당 대표라는 사람이 당을 불태워야 한다니요? 오만방자도 유분수지.”
[이 대표는 맥락을 잘못 이해하고 하는 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모든 국민이 그 연설문 문장들의 함의를 다 파악해야 할 의무는 없다. 대부분의 여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도)은 들리는 대로 이해한다(우상호 민주당 비대위원장처럼…). 설혹 오독(誤讀)·오해라 하더라도 이는 이 대표의 말뜻을 제대로 파악 못한 청자(聽者)의 책임이 아니라 모두가 정확히 어의를 파악하도록 말하지 못한 언자(言者)의 책임이다. 표현에 기교를 부린 말, 밑자락을 잔뜩 깐 말, 현학적인 말은 대중 연설에 적절치 않다.]
후배는 이 대표만이 아니라 ‘윤핵관’에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까지 울화와 실망감을 쏟아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자기가 뭔데 윤 대통령과 문자 대화 내용을 기자의 카메라에 슬쩍 흘렸답니까? ‘대통령과 나의 관계가 이 정도다.’ 그런 자랑을 하면서 이 대표 망신이나 주려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윤석열 개인이 좋아서 지지한 건 아니잖아요. 문재인 정권 연장을 막자고 주변 사람들에게 구걸하듯 해가며 표 얻어주려고 기를 썼는데 이게 뭡니까.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친구 사이라면 덩달아 말이 많아지겠으나 이 경우는 후배와의 통화다. 주로 듣는 입장에서 가끔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분노’였다. “예, 알겠습니다. 식사를 마저 하십시오”라는 인사말을 듣는 순간에 문득 ‘은감불원(殷鑑不遠) 고사가 생각나서 조언삼아 한 마디를 보탰다.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지요?”
“예.”
망할 작정이라면 뭔들 못할까
“모임에 가면 정치인들에게 거울 보내기 운동을 제안해보시면 어떨까요?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기 전에, 정치적 결정을 하기 전에 먼저 거울부터 보라고요. 저 사람들 어떻게 자신을 저렇게 모를 수가 있는지 답답하지 않습니까?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서 배우라는 뜻으로 거울 보내기를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중국 고대국가 은(殷, 商이라고도 함)의 마지막 왕 주(紂)는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지형(炮烙之刑)의 악행으로 망국을 초래한 폭군이었다. 그에게 서백(西伯) 창(昌: 훗날의 주나라 문왕)이 간했다. 전 왕조 하(夏)의 걸(桀)이 폭정으로 나라를 망쳤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은이 경계로 삼아야 할 거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가 거의 600년이었다. 그렇게 먼 사례를 거울삼을 것 없이 바로 자신을 거울에 비쳐보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거울 속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정치인에게 거울 보내기 캠페인을 정치에 관심을 가진 시민사회단체들에 제안하고 싶다(행정부·사법부 고위직 인사들에게까지 보내면 더 좋고). 단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만 보낼 일이다. 반대쪽 정당 및 정치인에겐 그들의 지지자들이 보내면 된다. 거울이 또 다른 정쟁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사족》
민주당 우 위원장은 국민의힘 이 대표의 기자회견과 관련, 윤 대통령을 겨냥해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이런 말을 듣고 이 대표는 우쭐해졌을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유력자라는 사람들은 우 대표의 ’한탄‘이 창피하지 않았을까?
민주당 이재명 의원은 지역 순회 당 대표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세를 과시하고 있다. 14일 충청지역까지의 권리당원 누적 득표율 73,28%, 국민여론조사 1차 발표 79.69%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이 의원을 당 대표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여당 사람들과 그 지지자들, 이런 상황에서도 내부 권력투쟁에 매몰될 작정인가? 하긴 망하려면 무슨 짓을 못할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