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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은 왜 R&D 인력을 분리시키나


입력 2022.08.22 11:10 수정 2022.08.22 12:04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독립된 조직 구성해 유연성 있고 스피디한 의사결정

생산직 위주 강성노조와 분리…임금체계 별도 구성 가능

인력 유출 방어, 외부 인재 영입 위한 임금 경쟁력 확보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전경. ⓒ데일리안

현대자동차그룹이 연구개발(R&D) 인력을 생산부문과 분리시키는 조직개편에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회사측은 미래 사업에 대응해 소프트웨어(SW) 등 R&D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배경으로 생산직 위주 강성 노조와의 분리를 통한 R&D 인력 수급 경쟁력 강화가 꼽힌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그룹 SW 역량 개발을 주도할 ‘글로벌 SW 센터’를 국내에 설립한다.


최근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MECA(모빌리티, 전동화, 커넥티비티, 자율주행) 중심으로 이동함에 따라 SW 역량이 향후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 분야를 중점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SW 센터의 핵심 역할은 최근 현대차‧기아가 인수한 ‘포티투닷(42dot)’이 맡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사내 설명회를 열고 TaaS(모빌리티 총괄) 본부에 있는 SW 개발 인력 50~60명을 포티투닷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기존 포티투닷 조직과 그룹 TaaS 본부 SW 개발 인력에 더해 향후 외부에서 SW 인력을 대거 영입해 글로벌 SW 센터의 규모를 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SW 분야 신입사원을 채용해 내부 인재를 양성하는 선순환 체제도 구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완성차 업체가 별도의 R&D 조직을 두는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세계 1위 업체인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SW 자회사 ‘카리아드(CARIAD)’를 출범시켰고,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2016년 자율주행 전문기업 크루즈를 인수해 자율주행 관련 R&D를 전담시키고 있다.


특히 GM은 한국 사업에서도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이하 GMTCK)라는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R&D 조직을 생산 법인인 한국GM과 분리시켜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W 조직의 운영이나 의사결정 과정은 기존 제조업 중심 기업과는 확연히 다르다”면서 “본사와 분리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해야 유연성 있고 스피디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GMTCK 엔지니어링 오피스 이노베이션 센터 로비 라운지. ⓒGMTCK

현대차그룹은 더 나아가 글로벌 SW 센터 설립을 통해 기존의 SW 인력 수급 과정에서 감수해야 했던 핸디캡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SW 인력은 자동차 뿐 아니라 전통의 수요처인 IT, 게임 등 여러 분야에서 막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그만큼 인력난도 심각하다.


기업들간 SW 인력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연봉도 크게 치솟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연봉 경쟁력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대차그룹의 임금은 제조업 중에서는 최상위에 속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에게는 밀린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지난 수 년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에게 고급 인력을 빼앗기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SW 등 R&D 인력들에게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도 어렵다. 생산직 중심의 강성노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가 사무‧연구직 책임매니저들 중 성과가 좋은 직원 10%를 선발해 500만원의 ‘탤런트 리워드’를 지급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그 방증이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사측의 탤런트 리워드 지급을 단협 위반이라고 반발했고, 결국 사측은 전체 직원에게 400만원의 특별격려금을 지급했다. 이후에는 다른 계열사 노조도 줄줄이 격려금을 지급하라고 들고 일어났다. 현대제철은 이 사안을 놓고 지금까지 노사가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R&D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임금을 높이는 게 불가피하지만, 그랬다가는 강성 노조로 인해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까지 크게 치솟을 우려가 있다.


R&D 인력을 기존의 제조 계열사가 아닌 별도의 조직으로 분리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부 인력에게 빅테크 기업들 못지않은 대우를 해줄 수도 있고, 역으로 고급 인재를 데려올 수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SW 개발자 같은 고급 인력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시장 논리에 의해 몸값이 치솟고 있지만, 생산직 근로자는 오히려 수를 줄여야 할 형편인데, 같이 엮여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글로벌 SW 센터 출범은 현대차그룹이 그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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