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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㉝] 양조위를 향한 2030 청춘들의 이유 있는 환호


입력 2022.10.12 08:27 수정 2022.10.12 10:4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선한 미소와 맑은 눈빛

나이 들어도 변함없는 소년미

인격이 드러나는 태도와 이야기

2030 청춘들의 이유 있는 환호

배우 양조위 ⓒ김민호 기자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로 달려간 건 8할이 배우 양조위였다. 지난 8일 열린 영화의전당 야외무대 오픈 토크, 팬심에 참석했지만 왜 그가 여전히 사랑받는 배우인가를 다시금 확인하고, 2030 청춘들의 환호에 새삼 놀란 기회였다.


중년 이상의 관객들이 양조위를 사랑하는 건 필연에 가깝다. 목소리를 빼앗기고 눈빛과 몸짓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배우임을 보여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가져다준 왕가위 감독과 함께한 일곱 작품 ‘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칸 수상작) ‘2046’ ‘일대종사’, 액션 전문 오우삼 감독의 ‘첩혈가두’와 ‘적벽대전’ 두 편,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유준위 감독의 ‘동성서취’, 진지하고 복잡한 캐릭터 연기에 탁월함을 알린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 세계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이안 감독의 ‘색, 계’와 더불어 우리는 양조위와 함께 나이 들어 왔다.


영화 '무간도'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연기력과 외모, 양수겸장 격의 배우가 흔치 않은데 양조위는 특히나 두 가지 모두 최상급으로 갖췄다. 연기력만 봐도 상처를 안으로 꾹꾹 눌러 담은 우수와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의 해맑음을 동시에 지닌 눈빛으로 어떤 장르에서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우리의 뇌를 설득하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목소리는 또 어떤가. 발성 좋고, 딕션(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 좋고, 음색마저 감미롭다.


부산 오픈 토크 현장에서 멀리 있는 그를 카메라로 당겨보기도 하고, 행사 무대 양편의 대형화면으로 바라보기도 하다가 중간중간 눈을 감고 뜻도 모르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음악처럼 감상했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목소리, 눈을 감고 있어도 사람 좋은 그의 미소가 보이고 뜻을 몰라도 널리 알려진 그의 차분한 인성을 들었기에 더없이 평화롭다.


오픈 토크 현장 ⓒ사진=연합뉴스

양조위에게만 집중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와 딸이 함께 열광하고 있는 건 기본,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듯한 앳된 숙녀 3명이 양조위의 손짓 하나 눈짓 하나에 꺄르르 행복해한다. 시야를 넓히니 남녀불문 2030 청춘들이 양조위를 향해 “귀엽다”를 연발하고, 흡사 아이돌 스타를 본 듯 환호한다. 양조위가 인상 깊은 말을 할 때면, 정확히는 통역이 뭉클한 말을 전할 때면 탄성과 박수로 호응한다. 양조위도 그 비언어적 표현이 무슨 뜻인 줄 알고 ‘저 환갑인데요’ 하듯 민망해하기도 하고, 만면에 감사의 미소를 띠기도 했다.


이동진 평론가의 뭉툭하면서도 깊이 들어가는 질문과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하고 생각해 성심성의껏 말하는 양조위의 답변 속에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보내기 싫은 우리 마음을 아는지 양조위는 앙증맞은 애교 속에 수천 명의 객석과 셀피를 찍고, 한국에서의 추억을 깊이 남기고 싶은지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자신의 손을 찰흙 속으로 꾹꾹 눌러 넣었다. 민망하면 짓는 귀여운 표정 ‘입꾹꾹’에 한국에서의 마지막 행사에 아쉬움을 담아 퇴장하던 양조위는 ‘롱 키스 굿나잇~’ 손뽀뽀로 한국인의 환대에 감사했다. 당연히, 소리가 휘감아 도는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는 감동의 탄성이 공기를 갈랐다.


다감하고 귀여운 양조위^^ ⓒ김민호 기자

2030 세대마저 매료시킨 배우 양조위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난해 9월 개봉한 할리우드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보러 갔다가 샹치(시무 리우 분)의 아버지 쑤 웬우 역의 양조위에 반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바다.


플랫폼 사용에 능한 MZ세대가 각종 OTT(인터넷TV)를 통해 ‘무간도’ ‘화양연화’ 등의 과거 출연작을 찾아서 즐기며 젊은 시절의 양조위에 또 한 번 매혹당하고, 이에 편승해 OTT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과거 작품들을 앞다퉈 공개하니 더 이상 옛날 배우가 아니다. 그의 과거 발언들을 찾아 읽고 보며 애정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풍문의 실체가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 GV(관객과의 대화), 오픈 토크에 몰려든 팬들의 수와 뜨거운 반응, 질문의 내용에서 확인됐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배우, 그 이전에 사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양조위의 말들, 그 말을 하는 눈빛과 표정, 손짓과 몸짓에는 겸손과 배려가 항상 함께했다. 자신은 낮추고, 나의 말로 인해 누구도 마음 상하거나 해 입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에서 지난 2009년경부터 시작했다는 쿵푸의 바른 자세와 덕성이 느껴졌다. 기성세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젊은이들에게 ‘어른’의 좋은 예가 보였을 터이다.


영화 '동사서독'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 왕가위 감독은 배우를 힘들게 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런 감독과 어떻게 7개 작품을 함께하셨나요.


“왕가위 감독의 작업은 대본 없이 시작합니다. 어떤 캐릭터인지 모르고 언제 끝날지(크랭크업)도 모르고 촬영을 시작합니다. 오늘 저의 촬영분이 있는지 모른 채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날의 대본을 받으면 집중해서 본 뒤 그날그날의 촬영을 최선을 다해 연기합니다. 그렇게 날들이 쌓이다 보면 제 캐릭터에 대해서 또 작품 전체에 대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생도 영화 촬영과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동사서독’이 가장 힘들었는데요(웃음). 촬영장이 사막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판잣집 같은 숙소가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도착해서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숙소를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전화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의 촬영분이 없는 날인 것을 알게 되면 가족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멀리 갔습니다. 그곳에 가면 건물이 있었고 어디 어디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면 한 남자분이 전화를 걸고 바꿔 줬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연기를 좋아한다면 즐길 것입니다. 3개월이든 2년이든요.”


영화 '색, 계'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제공

- 영화 ‘무간도’에서 맡은 진영인은 형사인데 폭력조직에 언더커버(비밀리에 첩보활동을 하는 형사)로 잠입합니다. 1년, 3년, 10년이 지나다 보니 자신이 형사인지 조직폭력배인지 헷갈리게 되고 행동도 거칠어집니다. 이 역할은 배우의 정체성과도 맥락이 닿는데요. 캐릭터 준비를 오래 하고 깊이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신이 이 배역인지 양조위인지 헷갈리지는 않나요.


“(진지, 솔직) 매번 헷갈립니다. 촬영 기간, 준비 시간이 길수록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촬영이 끝날 때마다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입니다.”


“준비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제게 대만의 역사, 미국 문학, 일본 소설 등에 관한 책을 가져다주셨어요. 리안 감독은 어느 미술관에 가서 어떤 그림을 봐둬라, 추천해 주시고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감독님께)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 수많은 배우와 연기를 했습니다. 그중에서 장만옥, 탕웨이 배우와 연기한 경험은 어땠나요.


“지금까지 같이 일했던 모든 배우가 다 편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 분들은 개인마다 다르고 각기 다른 장점을 갖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촬영하기 전에 호흡을 맞출 배우들이랑 친구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그래야 연기하면서 소통하기도 편하고, 대사 맞출 때도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할 수 있어서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장만옥이나 탕웨이, 두 분은 다 프로입니다. 특히 장만옥은 TV 시절부터 같이 한 배우라 조금 더 색달랐습니다. 처음엔 같이 신인이고 경험이 없었고, 나중에 영화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경험을 많이 쌓은 상태로 연기해서 특별했습니다. 탕웨이와는 ‘색, 계’ 촬영 3개월 전부터 미리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어요. 만나서 마작도 하고, 함께 춤을 배우고,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갔죠.”


- 배우 양조위와 함께했던 감독들이 이구동성으로 ‘영화에 모든 삶을 바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양조위 인생에서 연기를 떠나 중요한 3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가족과 친구’. 두 번째는 ‘공간’. 세 번째는 ‘운동’이에요. 스키 타는 걸 좋아합니다. 거의 모든 수상스포츠를 좋아해요. 물론 수면 위에서(수상) 하는 것만 좋아합니다. 바다로 들어가는 것, 물속은 무서워합니다(입꾹꾹).”


영원한 소년 , 양조위 ⓒ김민호 기자

- 당신이 출연한 영화 ‘일대종사’에서, 엽문(양조위 분)의 인상적 대사 가운데 ‘쿵푸라는 것은 수직 아니면 수평이다. 마지막에 꼿꼿이 선 자만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연기 인생 40년에도 여전히 수직으로 꼿꼿이 서 있는 양조위이므로 묻는다). 40년 연기 인생을 소회해 본다면요.


“저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40년 동안 사실 바쁘게 보내기도 했고, 훌륭한 사람들과 일했습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면서 4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홀어머니 아래서 가난을 딛고, 인생 역경에도 바른 품성을 잃지 않은 사람. 배우가 된 뒤에는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받쳐 다양한 캐릭터를 빚어 온 양조위. 환갑의 나이에도 소년미를 간직한 건 미소만이 아니다. 연쇄 살인마도 하고 싶고 진짜 악역도 하고 싶은 의욕을 감추지 않는가 하면 세계인을 만날 수 있는 글로벌 드라마로 영역을 확장하는 도전 의식에서 나이 들지 않는 소년이 보인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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