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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들의 형량, 왜 미국보다 낮을까? [박찬제의 기출문제]


입력 2022.10.13 07:01 수정 2022.10.13 07:01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우리나라는 가중주의 '대륙법' 체계…미국은 병과주의 '영미법’

강력범 선고 기사에 네티즌들 비판 잇따라…재판부 '솜방망이 처벌' 지적

영미법 체계로 바꾸기엔 현실적 여건 무리…재판부, 과거 판례만 쫓으면 안 돼

시대 변화·사회적 요구·국민 법감정 충분히 헤아려 양형 해야

법원 ⓒ데일리안

우리나라 재판부가 강력범들에게 선고하는 형량은 왜 미국에 비해 가벼울까. 우리나라는 가장 무거운 범죄를 중심으로 형량을 정하는 '대륙법', 미국은 여러 개의 범죄를 합쳐서 양형하는 병과주의를 따르는 '영미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나 사회적 이슈를 끈 강력범들의 형량이 선고된 기사를 보면 재판부의 양형 수위가 낮다는 비판 댓글이 쉽게 눈에 띈다.


실제로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를 살해해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조현진(27)의 기사에는 "30년이 말이 되나", "100년은 못줘도 50년은 줘야 하지않나", "사람 죽이고 고작 30년?" 등 재판부의 양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입양한 10대 아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강제로 먹이고 화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50대 여성의 기사에서도 이같은 비판 댓글은 많았다. "판사가 판결하는데 헷갈렸나 보다. 내가 판사라면 30년 선고", "판사는 아가 때부터 학대당한 10대 아이의 불행을 2년으로 퉁쳤다", "판사님, 고작 2년이 말이 되나요" 등 재판부의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미국에선 중범죄자의 경우 징역 100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신매매와 화폐 위조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천시 프라이스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콜로라도주 조직범죄법 위반, 미성년 인신매매 및 강제노역 등 혐의로 '징역 304년'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 재판부의 처벌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앞서 말한 '대륙법' 체계를 따르기 때문이다. 대륙법은 피고인의 여러 가지 범죄 혐의들 중 가장 무거운 죄의 형량을 기본으로 놓고, 다른 혐의들을 가중해서 처벌한다. 또 처벌을 통해 범죄자가 교정 또는 교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양형시 다양한 감형 요소를 고려해 기본적인 처벌 수위도 낮은 편이다.


징역 10년의 범죄와 징역 8년의 범죄를 각각 저지른 피고인이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동시에 재판을 받게 됐다고 가정해 보자. 가중주의를 따르는 우리 재판부는 징역 10년을 기반으로 한 다음, 징역 5년의 범죄 혐의는 가중 처벌할지를 따진다. 우리 법원은 가중 처벌을 하게 될 경우 최고 형량의 절반만을 선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징역 8년의 범죄는 가중 처벌시 4년으로 줄어든다. 즉, 최대 14년 형이 선고되는 셈이다. 피고인이 반성문을 제출하거나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면 처벌 수위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벽면에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가 설치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미국은 가중 처벌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징역 10년과 8년이 그대로 합쳐져 선고된다. 또 범죄자 응징을 목적으로 하는 엄벌주의를 채택한 미국 법원은 양형 시 감형되는 요소가 적다. 범죄 혐의가 4~5개가 된다면 처벌 수위는 더욱 벌어진다.


일각에선 우리나라도 영미법 체계로 전환해서 강력범들을 보다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법조계에선 현실적인 여건상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수십년간 따라온 대륙법 체계를 하루아침에 영미법으로 바꾸기가 불가능할뿐더러, 형량을 높게 선고한다고 해서 범죄율이 감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형량을 높게 선고할 경우 범죄자가 교정시설에 머무는 기간이 늘어나는데, 안 그래도 과밀 상태인 교정시설이 재소자의 형량이 늘어나면서 더 과밀화될 거라는 우려가 많다. 한 재소자는 국가인권위(인권위)에 '정원이 초과한 거실에 수용돼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이 재소자는 수용돼 있던 71일 중 47일은 1인당 거실 면적 1.90㎡(약 0.57평)에서, 11일 동안은 1인당 1.52㎡(약 0.45평)에서 8~10명과 함께 지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재판부는 현실적 요건만 고려해 국민들의 법감정을 외면해선 안 된다. 과거의 판례만을 무조건 쫓기 보다는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 국민들의 법감정, 현실적 여건을 충분히 헤아릴 필요가 있다.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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