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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물 ㉞] 강아지 옷 입히는 게 학대?…동물의 정신적 고통, 사회적 합의 필요


입력 2022.10.17 05:32 수정 2022.10.17 05:32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길고양이에 우산 휘두르며 위협, 대피소 쫓아가 폭행 시도…정신적 학대·고통 법적 판단 힘들어

1심 "유죄" 벌금형 →2심 "현행 금지조항에 신체적 학대만 있고, 스트레스 주는 행위 없어 '무죄'"

법조계 "강아지에게 옷 입히는 것도 논란 될 수 있어 …어디까지가 학대인지, 사회적 합의 우선돼야"

2023년 동물보호법 개정…강제로 물 주지 않고 혹한에 방치해도 처벌 가능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전경 ⓒ데일리안 DB

길고양이에게 우산을 휘두르며 위협한 50대 남성이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어서 신체적 학대가 아닌 정신적 학대로 인한 고통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조계에서는 동물 학대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대를 개념 짓는 판례도 부족해 재판부의 주관에 따라 학대 인정 여부가 달라지고 있다며, 이제는 동물의 정신적 고통을 포함한 동물 학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기준 마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최병률·원정숙·정덕수)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A 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6월 서울 관악구에서 밥을 먹고 있던 길고양이에게 우산을 휘둘렀다. 또 길고양이가 놀라 길고양이 대피소로 달아나자, 우산으로 대피소를 가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대피소에서도 고양이가 도망가자 또다시 쫓아가 폭행하려고 한 혐의도 받는다.


1심 재판부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형을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달랐다. 2심 재판부는 금지조항에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는 빠져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현행법상 동물학대의 정의는 '동물을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 및 굶주림, 질병 등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게을리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동물보호법 제8조 2항 4호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만 금지사항으로 정하고 있어 신체적 학대만이 처벌 가능하다.


다큐멘터리 '꿈꾸는 고양이'.ⓒ연합뉴스

법조계는 판결이 아쉽지만, 판례상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동물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영향을 사람처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받았는지 여부를 재판부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사람에 대한 폭행도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를 말하긴 한다"며 "하지만 사람은 폭력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우산으로 위협해도 유형력의 행사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고양이가 이 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정신적 고통으로 몸이 안 좋을 수 있지만, 동물은 말할 수 없으니까 사람에 대한 법리를 무조건 그대로 끌어오기는 힘든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법인 청음 문강석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보자면 재판부가 판례의 취지대로 선고한 것은 맞다"며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처벌하게 되면 그에 해당하는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정식적인 학대나 고통에 관한 것은 현재 금지조항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물법 전문 김동훈 변호사는 "학대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학대를 개념 짓는 판례가 아직 부족하다"며 "그 선을 누구도 정해주지 않고 있어 재판부의 주관에 따라 학대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했다.


법조계는 동물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동물 학대에 대한 기준도 점차 구체화돼야 한다며 어디까지를 동물 학대로 볼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 변호사는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라는 걸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다"며 "기준이 명확하고 선진화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도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향후 정신적 고통의 기준과 조항을 정해 학대에 포함시킨다면 처벌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강아지에게 옷 입히는 것을 학대라고 볼 수 있는지 등의 논란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동물보호법은 내년에 개정을 앞두고 있다. 금지조항 또한 확대되면서 점차 구체적인 기준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물손괴죄'가 주로 적용되던 반려동물 관련 사건에 동물보호법이 확대 적용되는 등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고 있는 추세다.


김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소극적인 학대 행위는 인정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며 "오는 2023년 4월 24일부터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되는데, 동물의 갈증이나 굶주림 해소 또는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목적 없이 강제로 물을 주지 않는 경우, 혹한에 방치하는 경우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수사기관에서 동물보호법을 잘 몰랐고, 알고 있더라도 재물손괴죄가 형량이 더 높아서 많이 적용했던 것"이라며 "지금은 동물보호법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형량도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동물보호법 적용이 늘어났다. 앞으로 사회적 인식이 더욱 개선되면 좀 더 다양한 긍정적 변화들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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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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