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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흔들었지만...K반도체는 외로워 [임채현의 再테크]


입력 2022.10.25 07:00 수정 2022.10.25 07:00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故이건희 회장 추진, 80년대 초 막 올린 반도체 산업

사업 10년 만에 글로벌 선두, 향후 20년간 자리 지켜

국가 안보사업인데...정부·사회는 '나몰라라'

세금·지역주의에 발목 잡혀 기업 홀로 고군분투

故 이건희 삼성 회장.(자료사진)ⓒ삼성전자

"TV도 못 만들면서 반도체를?"


1974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주변 경영진들에게 들었던 핀잔 섞인 만류다. 20년째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시장 1등을 달리는 잘나가는 삼성전자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도 제법 많을 것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기술 속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 진출 기틀을 마련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반도체 산업은 기초 소자인 트랜지스터를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오죽했으면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마치 '불가능의 영역'처럼 치부됐을까.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끊임없이 부친 이병철 선대 회장을 설득했다. 이어 1983년 '도쿄 선언'을 통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진출 공식화를 이끌어냈다.


그 다음은 누구나 잘 아는 '발전의 시기'다. 사업에 뛰어든 직후 삼성은 국내 최초로 64킬로바이트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당시 업계 초강국이었던 미국·일본과의 10년 격차를 절반 가량 좁혔다. 한때 적자에 시달려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돌았지만 기어코 1993년 세계 최초 64메가바이트 D램 개발에 성공, 지금까지 20년 넘게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일궈낸 반도체는 오늘날 한국 수출 경제의 20~30%를 담당하는 대표 산업 중 하나다. 인공지능(AI)과 5세대 이동통신(5G), 자율주행 등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그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는 사실상 이제 하나의 무기가 됐다. 전세계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국가의 명운을 내건 이유다. 한국은 40년을 앞선 삼성의 노력과 기술 덕분에 미국이 주도하는 칩4(반도체 동맹)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전세계가 반도체 각축전에 뛰어든 현재 한국은 제자리 걸음을 치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시가총액 100대 반도체 기업 중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SK스퀘어 등 3곳에 불과하다. 높은 법인세 부담 역시 그 이유 중 하나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산업 육성과 세금 공제 등을 골자로 하는 'K칩스법'이 발의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진전이 없다.


아울러 일부 지자체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반도체 산업의 백년대계를 무시하고 지역 우선주의를 앞세워 반도체 시설 착공을 반대하는 등의 사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 불황 사이클에도 눈앞의 적자를 감내해가면서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나가는 기업들의 노력이 빛바래지고 있다. 업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와중 국내 반도체 산업을 출범시킨 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2주기가 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도체 업(業)의 본질은 타이밍"이라던 그의 말을 우리 정부와 사회가 한번 새겨볼 수 있는 하루가 되길 기원해본다.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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