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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67] "실제로 전화 받아야 범죄? 법원이 고통 감내하라는 것"


입력 2022.11.08 05:05 수정 2022.11.08 05:05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피고 '발신 표시 제한' 기능 이용해 피해자에 4시간 동안 10번 전화…통화 수신여부 쟁점

법조계 "재판부, 벨소리 자체는 음향이라고 해석하지 않아…대법원 판단 필요"

"사건 전후 맥락 판결문에 담겨있지 않아 시민들 판결 납득하지 못해…재판부 조금 더 친절해야"

"스토킹처벌법 강화되는 사회적 분위기 반영하지 못한 판결…반의사불벌죄 규정 개정돼야"

지난 9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헤어진 연인에게 하루 10차례 전화를 건 남성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에 따라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조계에선 스토킹처벌법이 강화돼 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특히 사건 전후의 맥락이 판결문에 담겨있지 않아 시민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스토킹 피해자를 정말 보호하고 싶으면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54) 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지난 3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전 연인 B 씨에게 반복해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발신 표시 제한' 기능을 이용해 자신의 휴대전화번호가 상대방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한 상황에서 전화를 걸었고 영상 통화도 시도했다. 특히 A 씨는 하루에 4시간 동안 10회에 걸쳐 연속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B 씨는 이를 아예 받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스토킹처벌법의 스토킹 행위 정의 조항에 따라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원이 판단 근거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서혜진 변호사는 "재판부는 벨소리 자체는 음향이라고 해석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그런데 스토킹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원치 않는 연락을 받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경우다. 그렇기에 대법원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회사 주차장에서도 피고인을 마주하기도 했다. 다만, 피해자가 이 점에 대해서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공소 기각이 됐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된 경우다. 스토킹처벌법이 강화되는 사회적 움직임으로 스토킹에 해당되는 행위를 매우 세밀하게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며 "하지만 이 사건 판결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반하는 판결로 보인다. 특히 실제로 전화를 받아야지만 범죄로 법률을 적용해준다면, 법원이 피해자에게 '그 고통을 감내하라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네티즌들은 '집요하게 뒤를 쫓아다녀도 대화만 나누지 않으면, 그런 스토킹은 무죄가 되는 건가' '그러면 하루에 몇십 통씩 전화해도 되는 건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이은의 법률사무소 이은의 변호사는 "사건의 전후 맥락이 판결문에 제대로 담겨있지 않았기에 시민들이 판결을 납득하지 못한 것"이라며 "재판부가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전화 온 것 자체가 의사에 반하는 음향이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판결문에 어떤 상황들이었는지에 대한 전제가 담겨 있어야 한다"며 "명확한 전후 설명이 없으면 다른 재판과 판결에도 영향을 줄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토킹범죄로부터 진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서 변호사는 "디지털 기기나 통신 기기 등 현 매체를 생각해 봤을 때, 이런 규정들이 스토킹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 현실을 반영한 정의 조항은 절대 아니다"며 "최근에는 온라인을 이용한 비대면 스토킹이 증가하는 추세다. 앞으로 더 증가할 텐데,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스토킹을 현행 법률로는 규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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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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