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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앞은 좋고 내 집 아래는 싫다?…'님비'에 발목 잡힌 GTX 사업


입력 2022.11.29 11:52 수정 2022.11.29 12:0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일부 지역 이기적 행태로 계획 차질…경제적·사회적 손실 늘어

GTX-C,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의 우회안 요구로 사업 지연 위기

GTX-A, 청담동 주민 반발로 구청이 굴착허가 거부…행정심판 거쳐 공사재개

GTX-B, 재정구간·민자사업구간 참여 업체수 미달로 연이어 유찰 등 지연 우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 C노선(GTX-C) 민간투자사업 은마아파트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한쪽에선 “절대 내 집 아래는 통과 못한다”며 공사 방해를 일삼고 다른 한쪽에선 “반드시 내 집 앞에 정차해야 한다”며 투쟁을 외친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와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yard)’는 양 극단의 대척점에 선 것으로 보이지만,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지역이기주의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서울과 경기도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 역시 님비와 핌피 남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막대한 비용적, 시간적 손실은 물론 물리적 비효율성까지 감수해 가며 노선을 우회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신규역 설립을 놓고 해당 역 조성예정지가 아닌 인근 역 주민들이 반대에 나서기도 한다.


공사 방해 행위는 물론, 시위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며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여 무고한 시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하루 이용객 100만명을 예상하는 GTX 사업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심지어 사업 시행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등 경제적,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내년 2분기에 착공해 2028년 1분기 개통 예정인 GTX-C 노선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선로 우회 요구로 지연 위기에 봉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경기도 수원과 양주를 연결하는 GTX-C 노선은 삼성역~양재역 구간에서 은마아파트 하부를 지나는 형태로 계획됐다. 정부가 이같은 노선 계획을 공식화하며 사업을 발주했고,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2021년 6월 정부안을 준용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일부 주민들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공식 견해와 건설 전문가들 및 시공사의 설득도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수정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시위 효과를 높이겠다며 GTX-C 노선과 무관한 주책가에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나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자택 앞에서 장기간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정 회장 뿐 아니라 다수의 일반 주민이 사는 주택가다. 해당 사업과 무관한 인근 주민들도 함께 고통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은마아파트 전경. ⓒ데일리안 배수람 기자

최대 370여 명의 시위 참여자들이 주거지역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현수막과 피켓은물론 소음을 유발하고 있어 인근 주민들은 주거안정과 사생활을 방해받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접하는 거친 비방글과 시위 소리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자녀 교육에도 악영향을 낳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막무가내식 요구로 인해 노선안 확정이 미뤄지면서 설계 등 착공을 위한 제반절차도 여의치 않아 내년 착공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또한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요구대로 사업이 수정될 경우 추가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 상당 부분을 이용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GTX-C 사업노선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간담회에서 “GTX-C 관련 모든 안전 문제에 대해 국토부가 책임을 지겠다”며 “특히 은마아파트 구간의 공법은 기존 GTX-A, 한강 터널 등 도심 한가운데를 이미 지나가며 안전성이 검증된 공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일방적인 선동이 계속된다면 국토부가 행정조사 및 사법적 수단까지 강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GTX-C 노선과 관련 왕십리역 신설을 두고 인근 역인 청량리역 주민들과 왕십리역 주민들이 갈등을 빚은 사례도 있다. 청량리역 등 기존 10개역 이외에 왕십리역과 인덕원역이 추가 신설역으로 유력하게 검토되자 청량리역 주민들이 ‘원안사수’를 외치며 반대하고 나섰다.


정차역이 늘어날수록 ‘완행열차’ 수준이 되고 개통이 지연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면에는 GTX 정차적 위치가 집값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8월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 C노선(GTX-C) 민간투자사업 은마아파트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이미 2018년 건설에 착수한 GTX-A도 지역 이기주의로 큰 홍역을 치렀다. 서울 청담동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강남구의 굴착허가 거부로 이어지면서 공사가 1년여 동안 사실상 중단됐었다. 파주 운정과 동탄을 연결하는 GTX-A 전체 6개 공구 중 청담동이 속한 지역만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청담동 주민들은 대심도 터널을 뚫을 경우 지반 침하와 건물 균열 등으로 인해 거주지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며 노선 변경을 요구했다. 그러자 강남구청이 굴착을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노선을 변경할 경우 지질조사와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2023년 완공목표를 지키기 어려우며 2000억원 이상 공사비가 추가 소요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시공사인 SG레일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강남구청의 부당한 굴착허가 거부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이를 해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2020년 5월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가 시공사의 손을 들어주며 겨우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GTX-A 노선은 이같은 일부 지역의 이기적 요구와 유적 발견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2023년이던 완공 시점이 2024년 6월로 늦춰졌다.


GTX-B 노선은 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계속 유찰되며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걷고 있다. GTX-B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역까지 이어지는 노선으로 2024년 상반기에 전 구간을 동시 착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1일 열린 민자사업 구간 입찰에 대우건설 컨소시엄만 단독응찰하면서 유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재정구간도 세차례 연속 입찰 참여 업체 수 미달로 유찰됐다.


사업자 선정 입찰이 불발되면서 계획된 착공 일정은 차질을 빚을 것이 유력하다.


GTX-B 노선은 당초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진행한 민자적격성 검토에서 두 차례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수요 부족 등으로 인해 전 구간을 민자사업으로 진행해서는 사업성이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재정이 투입되는 재정구간과 민간이 참여하는 민자사업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사업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역 위치를 놓고 남양주시 및 인천시의 역 신설 및 이전 요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구리시는 여전히 갈매역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GTX-B 노선은 경제성 여부에 더해 지역 이기주의가 가중되면서 더욱 난항을 겪고 있다.


토목업계 관계자는 “공익을 외면한 무분별한 요구들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다수 시민들이 볼모가 되고 있다”며 “국책사업이 사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공익을 우선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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