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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간첩의 특징을 짚어보면


입력 2023.01.20 06:06 수정 2023.01.20 06:06        데스크 (desk@dailian.co.kr)

북한, 간첩조직 운영비용이 매우 싸져

2000년대 간첩은 다분히 무차별한 포섭

최근 적발 간첩 조직은 마이너 캠 출신

소소한 활동에 쓰다버리는 소조형 조직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최근 여러 곳에서 간첩 조직이 발각되었다. 창원의 민중자통전위, 충북의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제주의 ㅎㄱㅎ 등이 그러하다. 이들 조직은 80~90년대 민혁당이나 중부지역당 등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필자는 2000년대 간첩의 특징에 대해 말해 보겠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간첩조직을 운영하는 비용이 매우 싸졌다. 민혁당의 경우 북한은 윤택림이라는 대북공작원을 통해 김영환을 설득하여 지하당을 조직한다. 윤택림이라는 지하공작원을 양성하는 비용이 상당하고 김영환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잠수정, 난수표, 공작금(40만 불) 등 상당한 비용이 지출된다.


최근 적발된 간첩의 경우에는 남북행사, 해외교류 등에서 적당한 인물을 포섭한 뒤 해외로 불러 들여 주로 이메일 등을 통해 관리한다. 80~90년대 간첩의 유력 인물을 타켓 포섭한 데 비해 2000년대 간첩은 다분히 무차별한 포섭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간첩 조직을 만드는데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2000년대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비용이 들지 않는 형태의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간첩의 인적 구성도 이전과는 다르다. 민혁당 김영환, 일심회 장민호 등은 서울의 명문대 출신으로 주변에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최근 적발된 간첩 조직은 마이너 캠 출신으로 주로 지방에 거주하며 주변에 대한 영향력이 미미하다.


주사파는 80년대 중반 1기, 88~97년 2기로 나눌 수 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주사파 학생운동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서울대, 연고대 등 메이저 캠을 넘어 마이너 캠으로 주사파 학생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들 마이너 캠에서 주사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학생운동 졸업 이후 주로 사회활동(민주노총, 진보연대, 진보당) 등에서 주사파적인 생각을 이어가다 2010년대 중반 경에 북한의 공작라인에 포섭된 것이다.


ㅎㄱㅎ에 연루된 강모씨가 대표적인데 신문 보도에 따르면 강모씨는 50대 초반으로 진보당 활동에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의도가 그러하고 이에 포섭된 남한 간첩 조직의 인적 구성이 그러하기 때문에 2000년대 간첩 조직들은 활동 중심의 형태를 보인다.


보통 지하당은 정간은폐(정예간부 은폐)라고 해서 활동보다는 조직의 안정성에 중심을 둔다. 따라서 일단 지하당에 연루되면 사회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남들이 보기에 위장하기 좋은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편이다. 또한 활동도 대중 활동보다는 지하당을 확대하는 것과 같은 비밀스러운 작업에 주안을 두게 되어 있다.


반면 2000년대 간첩은 해당 조직원들이 함께 참가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진행하는가 하면 1인 시위, 소규모 캠페인 등 지하당 활동이라고 하기에는 미미하고 소소한 활동 등을 빈번하게 벌인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90년대 민혁당은 조직의 안정성을 중시한 데 비해 2000년대 간첩 조직은 쓰다버리는 소조형 조직으로 본 것이 아닌가 싶다.


향후 전망은 다음과 같다.


80년대 초반 이른바 386세대가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반미가 전면화되었다. 간첩 활동도 이 반미의 대중적 지반위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10년대 초반 스티브 잡스나 앨런 머스크 등 미국이 혁신의 진원지로 부상하면서 반미의 대중적 지반이 약화되었다. 반면 반중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이런 조건이라면 간첩 활동의 배경이 되는 반미가 경향적으로 약화될 것이기 때문에 간첩활동의 미래는 어둡다고 볼 수 있다.


위 간첩 조직들에게 보낸 북한의 지령 중 상당수가 한미 합동군사훈련 반대와 같은 반미가 주종을 이루는데 이에 호응하여 위 조직들이 벌인 소소한 반미 투쟁들이 거의 영향력이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는 인적 구성이다. 주사파-간첩 조직들을 대부분은 80년대 초반 서울의 명문대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조직했던 간첩 조직들이 민혁당, 중부지역당, 일심회, 왕재산 등이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이들의 영향력은 거의 소진된 것으로 보인다. 노골적인 친북활동 등 두드러진 친북활동들은 주로 일심회 석방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도 그러하다.


2000년대 간첩 조직들은 90년대 학생운동을 뿌리로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 또한 끝물로 보인다. 최근 간첩 조직들이 서울, 수도권이 아니라 창원, 청주, 제주와 같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서울 명문대를 기원으로 한 간첩 조직들이 세를 잃고 있다는 징표로 보인다.


주목할 만한 것은 주사파 운동은 대부분 학생, 인텔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사파 운동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학생이외의 집단에서 확산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짐은 미미하다.

간첩 조직 또한 사회적 배경을 갖는다. 90년대 민혁당, 2000년대 간첩조직들은 80년대 중후반 이래 반미라는 거대한 조류를 배경으로 주로 학생, 인텔리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반미에서 반중으로 변화하고 있는 조건에서 2000년대 간첩 조직은 거의 마지막 국면으로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민경우 시민단체 대안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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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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