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사업자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 미치는 행위 아냐"
"벌점 부과,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요청 등 기초자료 사용 위한 것"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법령 위반을 적발해 내리는 '벌점 부과'는 행정처분이 아니므로 공정위를 상대로 항고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한화시스템이 "공정위의 벌점 부과 처분을 무효로 해달라"며 낸 소송을 각하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군납물자와 장비·부품의 설계, 제조, 개조, 수리 등을 수행하는 한화시스템은 2018년 정보통신시스템 통합, 구축, 운영 등을 하는 한화S&C를 흡수합병했다.
그런데 한화S&C가 합병 전인 2014∼2017년 하도급법을 위반해 공정위로부터 총 6건의 시정조치와 벌점을 받은 게 문제가 됐다.
한화S&C의 3년 누적 벌점은 기준 점수를 넘는 10.75점이었다. 이에 공정위는 2019년 관계 행정기관장에게 한화S&C를 합병한 한화시스템의 입찰 참가 자격 제한과 영업정지를 요청하기로 했다.
한화시스템은 공정위의 벌점 부과 행위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애초에 공정위의 벌점 부과는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공정위의) 벌점 부과는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요청 등의 기초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자체로 사업자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항고소송 대상인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항고소송은 행정청의 처분이나 재결 등에 이의가 있을 때 제기하는 행정소송이다. 따라서 항고소송이 성립하려면 행정처분이 먼저 나와야 한다. 행정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의 주체로서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 집행을 해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이에 근거해 공정위의 요청을 받은 행정기관이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거나 영업 정지 처분을 내려 한화시스템이 실제 사업을 못 하게 됐다면 권리·의무에 영향이 생긴 것이겠지만, 그 전 단계인 공정위의 벌점 자체는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행정처분이 아니라는 게 대법원 판단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고(한화시스템)는 피고(공정위)의 요청을 받은 행정기관이 실제 입찰 제한이나 영업 정지 처분을 하면 그 행정기관을 상대로 항고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