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 규제하는 행정명령 이달 발표 전망
옥죄기 전략에도 中의 '반도체 굴기' 지속할 듯…韓 기술 개발·시장 다각화 필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반도체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기술·제조 장비를 아우르는 강력한 견제 장치로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메모리·시스템을 중심으로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중국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는 동시에 시장 다각화를 이뤄야하는 한국 반도체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21일 업계 및 외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달 말 중국의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예정이다.
행정명령은 미 기업이 중국의 첨단 기술 업체에 새로 투자하려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관련 첨단 기술 투자를 금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민간 자본의 대중국 투자를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좌절시키겠다는 강력한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들어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 조항'을 통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반도체 생산장비는 중국에 반입시키지 않도록 하는 규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대중국 규제 수위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가뜩이나 미·중 갈등에 끼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업체들이 추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지 관심이다.
당장 불똥이 튈 가능성은 적지만, 미국이 자국 뿐 아니라 동맹국을 대상으로 디커플링(탈동조화) 압박에 나선다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 제재 대상이 첨단 반도체여서 우리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제고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메모리를 중심으로 한국 기술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제외한 제 3국의 첨단기술 투자 유치 등으로 반도체 굴기를 도모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1위인 국내 기업들과의 격차를 상당 부분 좁힌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양쯔메모리(YMTC)는 지난해 232단 3D 낸드 플래시 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혀 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D램 제조사인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3D D램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이 기술을 확보하면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이 의존하고 있는 네덜란드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 반도체 자립을 꾀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중국 내 팹리스 기업은 현재 230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팹리스 시장에서 중국이 2020년 9%에서 2030년 23%를 점유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노력은 주요 정책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달 양회 이후 중국은 과학기술부 재편과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 '당과 국가기구 개혁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엔 미국 견제에도 핵심 기술 확보에 대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산업연구원은 '2023년 양회로 본 시진핑 집권 3기 중국 경제산업 정책의 중점' 보고서를 통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높여 중국의 과학기술 자립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첨단전략물자인 반도체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의 거센 기술 추격을 따돌리는 한편 반도체 판매 시장을 다각화하는 데 전략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수요 창출의 키(key)를 쥐고 있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중국 외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 시장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한·미 생산기지 투자 규모를 잘 조율해 경제성을 갖추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유럽, 동남아 등 지역으로 판매 창구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