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보증금 미반환' 임대인 신상공개 사이트 등장, 사진·이름·생년월일 적시…명예훼손 소지
법조계 "아무 이유 없이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면…죄질 나빠 높은 형 받을 수도"
"최소한의 법적 검토 혹은 반론 실어야…'디지털 교도소'처럼 악용 가능성 있어"
"국가의 공적 제재 통해 해결해야…사적 제재 허용하면 절차·규정 의미 없어져"
전국 각지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면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임대인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나쁜 집주인'이라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익을 목적으로 사이트가 개설됐지만,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민간에서 이같은 행동을 나서기 전에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선제적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4일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쁜 집주인'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빌라 등 보유주택 1000여채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지난해 사망한 '빌라왕' 김모(43) 씨 등 임대인 7명의 사진,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 개인정보가 공개돼 있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전세사기 관련 기사, 전세사기를 피하는 방법 등도 함께 게시돼 있다.
과거 '나쁜 임대인'과 유사한 '디지털 교도소'라는 인터넷 사이트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디지털 교도소'는 N번방 범죄자 신상을 공개했던 곳인데,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대표 구본창 씨 역시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일부 양육비 미지급자들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을 받고 있다.
법무법인 선승 안영림 변호사는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며 "최악의 경우 '나쁜 임대인' 사이트 운영자와 그가 저격한 임대인이 개인적인 분쟁을 겪고 있어 (악의적 목적으로) 글을 게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안 변호사는 "'디지털 교도소'라는 사이트도 있었다. 당시 이 사이트 운영자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사이트에 개시됐던 교수가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했다"며 "이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나쁜 사람으로 매도한 경우 죄질이 나쁘기에 높은 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을 게시하려면 최소한의 법적 검토 혹은 당사자로부터 반론을 듣는 행위 등의 조치를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아울러 안 변호사는 "'배드 파더스'에 올라온 사람들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다. ①배우자와 이혼을 했고 ②양육비를 줘야 하는 자녀가 있는데 ③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며 "반면 '나쁜 임대인'은 '보증금을 받았으면서 임차인에게 안줬다'는 사실밖에 없다. 집주인이 사기를 당해서 임차인에게 줄 여건이 안될 수도 있는 등 전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변호사는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까지 사회나 국가가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이 1차적 책임이 있다. 제도적 뒷받침이 되지 않아 사적 응징이 발생한 것"이라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선량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교도소'처럼 악용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호암 신민영 변호사 역시 "'나쁜 임대인' 운영자에겐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적용될 수도 있다. 다만,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정보를 공개했다면, 면책된다는 규정이 있다"며 "미성년 자녀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 파더스'라는 선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배드 파더스 운영자는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신 변호사는 "하지만 사적인 제재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자경단(심각한 범죄, 폭동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 중 일부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조직을 참칭하며 구성한 자발적 결사체)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며 "국가가 선제적으로 공적 제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뜻도 좋고, 결과가 좋다'는 이유로 절차적 문제가 있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절차와 규정이 의미 없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주원 최상혁 변호사는 "배드 파더스, 디지털 교도소, 나쁜 임대인 사례 모두 명예훼손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헌법 310조에 따르면 '공익의 목적'에 인정되느냐에 따라 위법성이 없어지는지 아닌지 나뉜다"며 "특히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나쁜 임대인' 사건 역시도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한 판단을 해석함에 있어 대법원 판례를 해석하는 판사의 재량에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