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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㊳] 기자가 시간여행자가 됐을 때 ‘어쩌다 마주친, 그대’


입력 2023.05.21 11:18 수정 2023.07.02 13:1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1987년으로 간 7년차 기자 윤해준의 미제 연쇄살인사건 진범 잡기

윤해준으로 분한 배우 김동욱 ⓒ 이하 KBS <어쩌다 마주친, 그대> 홈페이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기자는 정의에 불타거나 비리의 연결고리로 등장한다. 대중이 기자에 대해 가지는 지배적 인상 ‘사회의 파수꾼’과 ‘기레기’(쓰레기 기자), 양극단을 오간다.


관객이나 시청자로서 똑같이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잊을 수 없는 관점에서 볼 때 둘 중 어느 쪽도 편치는 않다. 거짓은 전하지 않으려 애쓰는 정도지 파수꾼이라 하기엔 부끄럽고 쓰레기로 폄하되기엔 억울하다.


까칠한 기자 윤해준 ⓒ

실로 눈이 크게 떠질 만큼 기자를, 정확히 말하면 기자의 특성을 흥미롭게 다룬 캐릭터를 만났다.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7년 동안 팩트만 좇아 온” 기자가 시간 여행자가 된다(이토록 멋지게 기자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집요한 취재력과 모은 정보를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분석력, 난관에 부딪혔을 때 대안을 찾는 돌파력과 녹록지 않은 상황을 견디는 근성, 겉으로는 거칠지만 알고 보면 내면에 깊이 자리한 휴머니즘을 지닌 기자. 그 특성을 십분 활용해 어쩌다 마주친 타임머신 자동차를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다 미제사건이 된 비극적 연쇄살인을 목도하고 진범을 잡아 ‘자신을 포함해’ 귀한 생명들을 구하겠다고 나선 사람.


마음에 쏙 들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는 주말뉴스 앵커를 겸하고 있는 기자 윤해준이고, 배우 김동욱의 표현력을 통해 탄생했다. KBS 월화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얘기다.


잔소리 대마왕 국어교사 윤해준 ⓒ

여기서 김동욱이라는 게 중요하다. 연기 잘하는 배우는 많고, 집요함과 끈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도 많다. 하지만 겉으로는 우정고 교련 담당 박 선생(장서원 분) 말마따나 “재수 없어 보일 만큼” 까칠 뻣뻣하고, 학생들에게는 꼰대 같은 참견이 심해 잔소리 시작 전 5분만 멋있다고 ‘오왕이’(5초만 왕자)라 불리는 국어 담당 교사인 동시에. 안으로는 누구 몸에서도 피 한 방울 나는 꼴 못 보고 위험한 일은 내가 다 전담하려는 측은지심과 이타 정신이 배어 있는 사람을 이질감 없이 표현하는 배우는 드물다.


배우 김동욱은 한 발 더 나간다. 이질감 없는 정도가 아니다. 본인이 얼마나 까칠한지, 자신이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사람인지 모르는 윤해준으로 ‘빚었다’는 점이 무릎을 치게 한다. 맞다, 백색토를 가지고 한 점 한 점 붙여가며 빚었고 김동욱의 표정과 말투, 몸짓으로 컬러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윤해준인지 김동욱인지… 물아일체 ⓒ

윤해준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추는지 알고 ‘그런 척’ 연기하면 우리 눈에도 ‘가짜’로 보인다. 하지만 김동욱은, 타인의 눈을 의식할 겨를 없이 나만이 연쇄살인을 막을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말단 세포까지 총동원해 전력 질주하는 윤해준을 탄생시켰고, 자신 또한 이 순간 시청자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계산하지 않고 상황과 인물에 몰입해 연기한다.


그 결과, 1987년 우정리에 가면 2021년에서 건너와 원래부터 거기에 살았던 것처럼 행동하며 촉각이 곤두선 채 살인범을 추적하고 그러면서도 남 아픈 일에는 금세 마음이 무너지고 표정이 누그러져 내 몸을 던지고 내 손길을 건네는 윤해준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자꾸만 요일을 착각하며 드라마가 방영하는 월요일을 마음으로 앞당기는 이유다. ‘김동욱 차’를 타고 ‘어쩌다 마주친, 그때’로 들어가고 싶다.


자꾸만 보고 싶은 커플 ⓒ

여기까지만 해도 별 다섯 연기인데, 김동욱을 빌어 탄생한 윤해준은 하나를 더 해낸다. 어쩌다 마주쳐 교통사고가 나면서 함께 1987년으로 오게 되고, 사고로 자동차가 망가져 1987년에 갇힌 백윤영(진기주 분)과의 로맨스가 ‘달달하다’. 6회까지 방영된 현재, 달콤까지는 아니고 이제 단맛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1987년 시작된 우정리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내가 죽인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 고미숙(김혜은 분)의 전담 편집자인 백윤영이 과거로 오게 된 건 우연이 아닌 듯하다.


고3 고미숙(지혜원 분)은 장차 윤영의 엄마가 될 이순애(서지혜 분)와 같은 반이었고, 고미숙을 스타작가로 만든 데뷔작 《작은 문》은 순애의 습작노트에 ‘Y에게’로 쓰여지고 있다. 윤영은 고 작가의 편집자인 덕에 아직 발간되지 않은 《내가 죽인 사람들》의 원고를 가지고 있고, 소설의 내용은 1987년 기준 아직 벌어지지 않은 그러나 윤해준이 여러 시간대에서 조사해 온 사건의 정황 단서들과 일치한다. 게다가 2021년, 이순애는 극단적 선택으로 보이는 가운데 타살일 수도 있는 비극을 맞이한 상태다.


오늘은 일요일, 드라마는 내일…월요일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 ⓒ

때문에, 왜 연쇄살인범 잡기에 혈안이 된 건지 각자의 비밀을 숨긴 채 서로를 경계하던 윤해준과 백윤영은 이제 ‘진실 찾기의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고. 비밀의 벽을 허물고 진실을 공유하는 사이, 1987년이 낯설어 윤영이 종종 좌충우돌 위험에 처하고 해준이 이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사이, 청춘남녀는 자신들도 모르는 새 달콤으로 가고 있다.


타임 슬립(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이 이웃의 정과 감성이 충만했던 추억의 시절로 우리를 데려가고, 미스터리 진범 찾기가 스릴을 더하고, 밤톨 깎아 놓은 듯 반듯하게 생긴 김동욱과 왠지 모르게 보는 이의 마음을 끄는 씩씩한 매력의 진기주가 로맨스를 예고하니 자꾸만 보고 싶다. 하아, <어쩌다 마주친, 그대> 아직도 하루를 더 보내야 만날 수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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