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연체액 5000억원 '목전'
IFRS17 시행으로 부담 가중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 오히려 위험을 간과할 수 있다는 비유의 회색코뿔소.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소개한 이 개념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금융시장에 경종을 울리는 단어로 대두되고 있다. 수년 전 잠깐의 제로금리 시대 동안 급격히 덩치를 키운 천문학적 빚은 최근 높아진 이자율을 맞닥뜨리자 그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끝내 균열이 일기 시작한 빚 연체의 현주소와 그 속에 담긴 저마다의 속사정을 톺아본다. <편집자주>
국내 보험사들이 내준 여신에서 발생한 연체가 1년 새 두 배 가까이 불어나며 5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이 본업이 아닌 보험업계임에도 높아진 금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런 와중 보험사의 재무 부담을 키우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올해부터 본격 가동되면서 이중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 대출에서 발생한 연체액은 지난해 말 기준 4582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77.0%(1993억원) 급증했다.
이에 따른 보험업계 대출 연체율은 0.17%를 기록했다. 업권별로 보면 생명보험사가 0.13%, 손해보험사가 0.23%로 집계됐다.
주요 보험사별 연체율은 ▲삼성생명 0.08% ▲한화생명 0.18% ▲교보생명 0.11% ▲삼성화재 0.09% ▲현대해상 0.13% ▲DB손해보험 0.08% ▲KB손해보험 0.02% ▲메리츠화재 0.98% 등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를 포험한 금융권에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리 인상, 수출· 설비투자 부진 등 제조업 중심 경기둔화 등으로 대출 수요는 늘어나는데, 돈을 갚을 여력은 저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점도 악재다.
특히 보험업계는 IFRS17의 도입과 더불어 시장 금리 하락으로 인해 재무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IFRS17에서는 부채가 시가 평가 되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부채 관리에 대한 걱정이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험 계약 시점 대비 시장 금리가 떨어지면 부채 할인율이 낮아져 추가 적립이 필요해진다.
게다가 금감원이 IFRS17 계리적 산정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며, 손해율 등에 대해 보수적으로 가정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자 보험업계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새로운 지급여력제도(K-ICS)의 도입도 고충을 더한다. 고려해야 하는 위험 요소가 늘어날수록 책임준비금 등 대비책을 더 많이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舊) 지급여력제도에서 평가하던 ▲보험 ▲금리 ▲시장 ▲신용 ▲운영 외에도, K-ICS는 하위위험인 ▲장수 ▲해지 ▲사업비 ▲대재해 ▲자산집중 등의 리스크도 새롭게 추가해서 평가한다.
보험연구원에서는 K-ICS로 인해 신용리스크 신뢰 수준이 99.0%에서 99.5%로 상향 조정되면, 생보사와 손보사 일반대출채권의 금리리스크도 1.107배 증가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연체 채권 증가는 보험사뿐 아니라 전 금융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금융당국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금감원은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규모가 높은 수준이고 향후 자산시장 및 시장금리 향방에 따라 증가세가 빨라질 수 있는 만큼, 경각심을 놓지 않고 관리에 고삐를 죄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대출 연체 동향을 상세히 모니터링 하겠다고 시사함에 따라 각 보험사에게도 자기자본을 확충해 손실 흡수 능력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서민경제 불황으로 인해 가계대출 위주로 여신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라며 "보험사의 경우 DSR 적용 대상이 아닌 약관대출 위주로 고객이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수록 연체채권 관리와 사후관리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