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DJ 도와 수평적 정권교체
진정한 민주화의 디딤돌이 됐다"
정우택 "각박한 정치 아닌 JP의
여유와 여백의 정치가 그리워진다"
서거 5주기를 맞이한 '충청의 맹주' 김종필 전 국무총리 추모의 열기가 현 여권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도서관에서 5주기 추도식이 엄수된데 이어, 의원회관에서는 추모 사진전도 개막했다.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피로감이 고인을 향한 추모 열기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현 야권 인사들은 김 전 총리 관련 행사에 한 명도 자리하지 않아 아쉽다는 관측이 나온다.
'운정 김종필 추모 사진전'이 26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개막했다. 이 자리에는 사진전을 주최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 정우택 국회부의장, 김기현 대표, 박대출·박덕흠·송석준·이용호·이철규·구자근·김승수·서정숙·유상범·이인선·이종성·태영호·한무경 의원이 참석했다.
정진석 의원은 이날 개회사에서 "헌정사에 독보적인 9선 의원이었고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한 정치거목임에도 4년 동안 부여 가족묘원에서 제를 올리다가 5주기를 맞아서 처음으로 국회에서 추도식을 올렸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사진전을 개최해 김종필 총재를 회고하는 시간을 함께 갖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16대 국회에서 자민련 공천으로 정계에 첫 입문을 한 나는 총재의 정치문하생"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선친(정석모 자민련 전 부총재)과 김종필 총재가 공주고 졸업동기생이라는 더 특별한 인연도 있어, 내가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됐고 영원한 정치의 스승으로 추앙하고 있다"고 고인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아울러 "공교롭게도 총재의 지역구도 내가 물려받았고, 총재가 초대 회장을 맡았던 한일의원연맹 회장도 내가 이어받은 것만 봐도 각별하다"며 "총재의 5주기를 맞이해 마련된 사진전을 통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큰 업적을 이뤄낸 총재를 회고하는 귀한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뒤이은 추모사에서 "자민련 때 현역으로 있던 사람 중 지금까지 아직 현역 의원을 하는 사람이 나와 정진석 의원, 두 사람만 남았다"며 "기자로 자민련을 출입하다가 의원이 된 분으로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이용호 의원이 있는데, 이분들도 개별적으로 (김종필 총재와) 많은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정 부의장은 고인의 아호 '운정(雲庭)'을 가리켜 "운정이라고 하면 구름정원인데 오늘 구름이 많이 껴서, 하늘에서 구름 사이로 사진전을 내려다보실 총리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싶다"더니 "여러분, 내가 간지 5년이 됐지만 여러분들이 이렇게 사진전을 개최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성대모사를 해서 각자 고인과 인연을 갖고 있는 청중들 사이로 웃음꽃이 번지게끔 했다.
이날 사진전에서 '대표 사진'으로는 바둑을 두고 있는 김종필 전 총리의 선글라스에 흑백의 바둑알이 교차하는 바둑판이 비친 사진이 꼽혔다. 1968년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2선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김 전 총리가 공화당 탈당계를 내고 부산으로 내려가 해운대 국제호텔에서 구태회 의원과 대국하던 때의 사진이다.
JP 추모 열기에는 여야 극한 대립의
정치를 향한 국민적 피로감 반영된 듯
야권 지도부는 물론 충청권 의원들도
추도식·사진전에 불참…의문 자아내
정진석 의원은 이 사진을 가리켜 "선글라스에 비친 흑백의 바둑알이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격랑의 정치여정, 복잡다단한 정치여정을 예고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라며 "제일 걸작"이라고 치켜세웠다.
정우택 부의장도 "선글라스에 비친 바둑판 사진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 사진이 가장 백미가 아닐까"라며 "굴곡의 정치현장에서 JP가 절차탁마 끝에 어떤 결단을 했는지 회고함으로써 우리 후학들이 JP정신을 어떻게 받아안을지 생각하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평했다.
이처럼 김종필 전 총리는 수담(手談)을 비롯해 수채화·만돌린·아코디언·피아노·서예 등 문화예술적 소양으로 정치적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압력을 해소해왔다. 정말로 긴장이 고조된 정국에서는 막말 대신 "자의반 타의반" "춘래불사춘" "소이부답" "몽니를 부린다"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겠다" 등 절묘한 수사법을 동원했다.
이날 추모사에 나선 인사들은 김 전 총리가 '발상의 전환' '동맹의 역전'으로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했다.
정진석 의원은 "김종필 총재가 산업화에 앞장선 것은 알겠는데 민주화에 무슨 공헌을 했느냐고 되묻는 분들이 있다"며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서 대한민국의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내 진정한 민주화의 디딤돌이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라고 단언했다.
정우택 부의장도 "정쟁과 각박으로 흐르는 정치가 아니라 JP정치처럼 여유와 여백, 화합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지는 때"라며 "자리를 같이 해준 모든 분들이 사진전을 통해 JP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시라"고 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야권의 중추를 이루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김 전 총리의 5주기 추도식에 이어 사진전에도 한 명도 자리하지 않았다. 대전·세종·충남북에 18명의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데 '충청의 맹주'이자 충청이 낳은 정치지도자인 김 전 총리의 추도식과 사진전에 한 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야권 출신으로는 정대철 헌정회장이 이날 사진전에 자리해 추모사를 했다. 민주당 출신인 정 회장은 고인이 여야 수평적 정권교체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며, 존경과 경애의 뜻을 피력했다.
정대철 회장은 "DJ가 39만 표 차이로 이긴 것을 보면 JP의 충청 표가 없었으면 (정권교체가) 되지가 않았다"며 "내게 '남들이 나보고 '군사혁명 했다'고 하는데 맞아요. 그것을 내가 또 제자리로 돌린거요'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생생하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