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피고인 행동, 비밀침해죄 위반…연인이라도 상대 휴대전화 열람할 권리 없어"
"'휴대폰 뒤진 것' 일회성에 그쳐…반복적으로 행한 것 아니기에 '스토킹 처벌법'은 피해"
"재판부, '상대 휴대폰 열람하는 행동' 문제라고 시민들에게 인식시켜 주려고 했을 것"
"결과적으로 '벌금 30만원 및 선고유예 2년' 판결한 것은…'선처한다' 의미 담겨"
애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스마트폰을 열어 과거 교제한 상대의 정보를 알아낸다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형법상 비밀침해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휴대폰 비밀번호를 들었더라도, 전 연인의 정보를 알아낸 것은 허용범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하진우 판사는 전자기록등내용탐지 혐의로 기소된 A(30) 씨에게 벌금 3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A 씨는 2020년 12월 남자친구였던 B 씨의 휴대전화에 비밀번호를 몰래 입력해 그의 전 여자친구 연락처와 동영상을 열람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법정에서 “복잡한 이성 관계로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B 씨가 비밀번호를 알려줘 이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로 사당법률사무소 오종훈 변호사는 "위 사건은 형법 316조 2항 위반에 해당한다. 연인 사이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휴대전화를 열람할 권리는 없다"며 "다만 피해자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고, 알려주었다 하더라도 허용해준 범위를 넘어서 정보탐색을 했기에 재판부가 벌금형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오 변호사는 "이 사안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일회성으로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반복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스토킹 처벌법 적용이 되지않는다"며 "아울러 '스토킹 범죄'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위와 같은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스토킹 처벌법 혐의 적용은 본 사안과 관련이 없다"고 부연했다.
법무법인 리 이인철 변호사는 "판결 자체는 적절하다고 보여진다. 연인이 아니라 부부간에도 법적으로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를 위반하면 형법상 비밀침해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판결이라는 것은 한 번 선고가 되면, 판례로 축적된다. 그렇기에 다른 유사 사건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며 "다만 1심 판결이기에 대법원 선고처럼 기속력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치유의봄 김은정 변호사는 "비밀침해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검찰 단계에서 피고인과 피해자가 합의되었더라면 불기소 처분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다투었고, 검찰은 피고인에게 혐의가 인정된다고 봐서 벌금 30만원으로 약식 기소한 것"이라며 "연인 또는 부부 사이에 휴대폰을 열어본 행위로 비밀침해죄가 적용돼 문제가 된 경우는 많지 않다. 재판부에서는 이 판결을 통해 '해당 행위는 명확하게 형사적 범죄에 해당하니,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시민들에게 주려고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주장한 것처럼 피해자가 피고인과 만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했던 문제는 도의적으로 보았을 때 잘못된 행동인 점은 맞다. 재판부도 피해자가 평소 이성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켜 온 것이 맞다면, 피고인의 잘못된 행동에 일부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같다"며 "이를 종합해봤을 때, 재판부가 유죄 판단인 벌금형은 유지하되 선고유예 처분을 했다는 것은 선처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